나는 노잼인 사람을 좀 더 좋아한다. 임팩트 있게 요약하고 정리하는 건 내가 할 수 있으니까 누군가는 바보 같고 답답해 보여도 되게 진지한 얘기, 때에 맞는 얘기, 꼭 필요한 이야기를 해주었으면 하고 바라는 쪽이다. 그래서 나는 재미와는 담 쌓은 것으로 (정치권에서는) 널리 알려진 민청련계 사람들(예외도 없진 않다)에게 비교적 호의적인 편이다. (물론 혐세로 유명한 우원식 의원에게는 좀 복잡한 의견이지만.)
| 출처 : 김근태재단 사이트 |
연설의 달인이나 글 솜씨가 기똥찼던 사람으로 평가하긴 어려울 것 같지만 어쨌든 김근태라는 사람은 인생으로 해야 할 말을 대신 해온 사람에 속한다. 되게 노잼이고 그렇게 하면 인기를 많이 얻긴 글렀어도 어쨌든 자기가 옳다고 믿은 길로 계속 가긴 갔던 사람. (사실 2007년부터 파킨슨을 앓았고 고문후유증이 심해 치과 진료를 받기조차 어려웠다고 하니 정치인으로서의 삶이 정말 쉽지는 않았을 것이다.)
지난 2026년 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의 결과와 그 이후 이어진 올공극우의 발호, 정혐 부추기기에 여념이 없는 언론을 보며 생각을 정리할 겸 이것저것 뒤적거리다가 716정권 후반에 치러진 2011년 4·27 재보궐 선거 후 김근태 당시 민주당 상임고문이 쓴 글을 보았다. 6·29선언 이후 양김 분열로 대선을 패배한 기억이 일생 정치를 함에 있어서 가장 쓰디쓴 것이었는지 김근태 선생은 국면마다 야권 통합을 굉장히 강조하는 사람이었다. 이런 점만 유의해서 읽는다면 다소 생각해볼 만한 점이 있다고 생각해서 기록용으로 옮겨 놓는다.
이번 4·27선거는 국민 분노의 폭발이었다. 716과 한나라당에 대한 무서운 심판이었다. 물가대란을 비롯한 절박한 민생문제에 대해 해결할 수 있는 아무런 방편도, 실효성 있는 조치도 없었다. 그런 저들에 심각한 패배를 안긴 것이다.
우리는 반사이득을 본 측면이 강하다. 야권연대가 상당한 정도로 이뤄져 국민이 결심하는 계기가 되었다. 심판론을 불붙게 만들었다.
민주당도 쉽지 않은 부담을 나눠진 것이 사실이다. 순천에서 무공천한 것과 김해에서 야권단일화를 위해 나름대로 노력한 것, 분당에 위험이 적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손학규대표가 후보로 나선 것 모두 국민에게 전달된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 후보가 직접 당선된 곳은 분당과 강원도지사 둘 뿐이다. 하지만 국민의 관심과 주목을 모으기 시작한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이러한 분위기가 민주당을 “지금 이대로”에 안주하게 만들 개연성이 있다. 그것은 민주당을 위험에 빠뜨리게 할 수 있다. 그것은 716 세력의 아류에 지나지 않는 “거짓 희망”에 대해 다시 주목하고 관심을 갖게 만들 수 있다. 이번 4월 27일에 동시에 치러진 지자체 장·의원 선거에서 양양군수를 제외하고는 이렇다 할 승리를 거둔 곳이 없다. 작년 6·2지방선거에서 그야말로 대승을 거두고서도 그 몇 개월 뒤 치러진 10월 재보선은 참패를 당하지 않았던가?
이제는 지나간 이야기처럼 들릴지 모른다.
2004년 총선에서 민주세력은 의석 절반을 넘어섰다. 첫 번째 당선자 워크숍에서 당시 당을 주도했던 이른바 “주류측”이 중도적 실용주의를 내걸었다. 과반수에 고무되어 오버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래서 중간계층을 끌어들이기 위해서 이른바 “중도 실용주의”를 주장했다. 이런 깃발이 국정운영기조에 큰 충격을 준 것은 물론이다. 참여정부는 개혁을 추진하고 있는데, 당시 여당이었던 정치세력은 그것을 반대하는 듯한 중도실용주의 깃발을 내걸었다. 그 결과는 말할 것 없이 혼선과 혼란이었다.
중간계층의 획득은 중요하다. 그러나 그것은 확고한 철학에 기초한 정책과 대안의 제시, 그것의 실천을 통한 중간계층의 참여로 이루어져야 한다고 나는 믿는다.
이번 4·27 분당선거에서 인물론을 강조한 것은 고심에 찬 것이었다. 만일 그렇게 하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을지 장담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것이 한나라당 지지자들을 투표장으로 집결시키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다른 측면도 있다. 출근 전, 점심시간 때, 퇴근시간 때 30~40대가 대거 투표장으로 나선 것은 아무래도 “심판론‘에 공감하고 동조했기 때문이 아닌가? 그런 심판론이 적극적이고 강하게 제기되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도 해보게 된다.
일부에서 위험천만한 이야기가 들려나온다.
이번 분당선거에서 인물론이 통했다. 중간층이 민주당을 선택한 것이다. 그러니 중간층을 끌어들이기 위해서 중도노선을, 중도주의를 내걸자는 주장이 일부에서 제기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지금 중도실용이 캐스팅 보트(casting vote)로 보이지만 곧 낭떠러지가 나타나는 길이다.
이번 4·27선거도, 작년 6·2 지방선거도, 작년 10월 선거도 국민의 승리, 야권연대의 승리였다. 범야권 연대는 조건이 아니라 승리의 전제이다. 그것을 위해 진보적인 다른 야당들, 개혁적인 시민단체와 꾸준히 정책연합을 실현해 나가야 한다. 국민의 신뢰를 얻을 수 있어야 한다.
총선과 대선에서 후보단일화를 하되, 감동적으로 이룰 수 있는 방안이 무엇인지, 어떻게 그게 가능한지 논의해야한다. 원탁테이블을 서둘러서 만들어야한다. 시간이 충분치 않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민주당을 개혁하는 것이다. 그것을 통해 국민이 바라는 절박한 민생문제 해결과 평화, 복지, 민주적 시장경제의 실현을 향한 대안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당조직 개혁을 통해 정치에 참여하는 모든 인사와 세력에게 공정한 기회가 보장될 수 있어야 한다. 그럴 때만이 이 독선적이고 오만한 특권 부자세력의 지배를 끝내버릴 수 있을 것이다.
그곳으로 가는 전진기지가 되어야하지 않겠는가?
2011년 5월 2일
김근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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