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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없이 투명에 가까운 국정조사 요구서

두 거대정당이 이번 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의 일부 지역에서 발생한 투표용지 부족 사건과 관련하여 국정조사 요구서를 제출했다. 접수 순서는 내란순장조가 약간 빨랐다.  출처 :  https://likms.assembly.go.kr/bill/bi/billDetailPage.do?billId=PRC_Q2N6D0J6U0D8K1S4Y2B0B4G3T7C3D3 출처 :  https://likms.assembly.go.kr/bill/bi/billDetailPage.do?billId=PRC_T2H6F0P6L0Q8O1E4Q2R3B2B3F1Y1L8 당연히, 투명에 가까운 요구서는 내란순장조의 것이다. 왜 투명하다고 했냐면 너무 의도가 빤히 보여서다. 당연히 국정조사 요구서인데 국정조사를 요구하는 의도 아니냐고? 일단 내용을 좀 살펴보자. 우선 두 요구서의 공통점을 정리해 보면 이렇다. — 근거규정 : 대한민국헌법 제61조 국회법 제127조 국정감사 및 조사에 관한 법률 제3조 — 조사대상 : 중앙선거관리위원회 및 각급 선거관리위원회 — 공통 조사사항 : 투표용지 부족의 원인·경위, 잠실7동 제2투표소 봉쇄 사태, 재발 방지 대책·제도 개선 — 특위 위원정수 : 18명 — 국정조사 기간 : 구성으로부터 60일 전체적으로 다른 점을 말하자면 우선 내란순장조 요구서는 MSG를 많이 친 맛이다. 가령, 이런 부분. 출처 : 내란순장조 국조 요구서 그에 비하면 민주당 안은 다소 싱겁게 느껴질 정도로 객관적 자료 제시와 논평 위주다. 출처 : 민주당 국정조사 요구서 이제부터는 조금 더 구체적으로 조사범위를 가지고 따져볼 텐데 민주당은 크게 가~라로 네 가지로 분류하고 그 아래에 세항을 설명해둔 반면, 내란순장조 안은 그냥 구체적인 내용 없이 가~자까지 주욱 한 문장씩으로 나열해 놓았다. 클로드에게 표로 정리를 좀 해달라고 했다. 민주당 안을 기준으로 내란순장조 안을 보면 이렇다.  내가 두 국조 요구서를 읽고서 처음으로 든 생각은 '내란순...

남인순 국회부의장에 대한 기억

벌써 남인순 의원이 4선이라니 나는 아직 남 의원이 남 의원이 아니라 남윤 의원이던 시절에 회관 같은 층 사무실에서 일을 했었다. 부모성 함께쓰기 운동이 한창일 때 활동가였던 남 의원은 남윤인순으로 오래 활동을 했지만 사실 비례대표로 제19대 때 등원할 당시부터 '법적 이름'과 '활동가로서의 이름'이 달라 이걸 쓸 수 있니마니 좀 멋 없는 설화가 있었다. 첫 임기 때는 그래도 '남윤'을 사용하다가 아마 송파 병으로 지역구를 잡으면서는 역시나 이런저런 불편함 때문에 '남인순'으로 고정하기로 한 모양이다.   출처 :  https://www.women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80506 물론 한여연 상임대표 출신으로 호주제 폐지에 앞장선 여성운동가라고 해서 오점이 아주 없느냐 하면 그건 아니다. 자살한 서울특별시장을 무리해서 실드 치면서 솔직히 여성계 원로로서의 명성을 심하게 깎아 먹었다. 거의 마이너스 아닌가 모르겠다. 이 당시 여성운동가로서의 남윤인순을 가장 엄밀하게 여성주의를 가져다가 가루가 되도록 까던 쪽이 평소 여혐에 가장 앞장서는 집단이었다는 점은 매우 웃픈 점이기도 하다.  뭐. 그렇긴 한데 일단 의정활동에서는 일관성이 있이 해온 면이 있는 것도 사실이라서, 그리고 어려운 지역구를 연속 세 번 방어를 했다는 점에서도 그렇고 예전처럼 아주 열렬히는 아니더라도 그래도 그냥 의정활동 어떻게 계속 잘 하나 하고 지켜보는 그런 의원들 중 하나이다.(현재 강남3구 중 민주당 지역구는 송파 병이 유일하다.) 김상희, 김영주(젠장) 부의장에 이어 다시 한 번 국회부의장으로 여성의원이 선출된 것은 당연히 환영하는 바이다. 기록용으로 당선 사례를 남겨둔다.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그리고 조정식 국회의장님, 선배 동료 의원 여러분. 국회부의장으로 선출된 서울 송파병 남인순입니다. 저에게 막중한 소임을 맡겨주신 데 대해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오늘 이 자리에 서니 2012...

아 어쩌란 말이냐

트위스트 추면서 출처 :  https://www.nocutnews.co.kr/news/6529327 출처 :  https://www.chosun.com/politics/politics_general/2026/06/09/PBPIZCY45JA35CHKB6PSXNV6IU/ 출처 :  https://www.edaily.co.kr/News/Read?newsId=02981526645480080 당신들끼리 말은 맞춰서 오든가. 국정조사의 주도권이 갖고 싶으면 빨리 원내대표 선거부터 하고. 9일에 한다던 걸 하루 미뤄 10일에 한다고 한다. 그러나 솔직히 원내대표가 되든 솔직히 장쩜오가 버티면 딱히 나가라고 할 수 있을 인사는 없다. 출처 :  https://www.newsis.com/view/NISX20260608_0003661045 친뚜껑계니 소장파니 저래봐야 자기들은 후보가 없다. 캐피털킴 분은 지도부 거취 표명해야 한다는 식으로 말했지만 거취를 '사퇴 안 함'으로 밝히면 어쩔 건지 아무도 모르는 거다. 내내 그렇게 살아온 사람이다. 게다가 장쩜오가 사퇴한다 한들 그 당시 원내대표가 비대위원장이 될 테고 그럼 그게 성일종 씨든 정점식 씨든 간에 실질로는 거기서 거기일 확률이 높다. (정점식이 될 확률이 가장 높다고 한다.)그리고 사실 윤새끼 선거법 위반 재판 2심에서 지금 당선무효형(벌금 100만 원 이상, 구형은 징역 2년된 상태)이 나오면 397억을 토해낼까 말까 한 기로인데 살짝 눈치싸움 상태 아니려나? 쩜오한테 몰아주려고. 아울러, 국조든 특검이든 주도권을 가져가고 싶다면 아마 검찰범죄(조작기소) 특검법 통과도 감수해야 할 것이다.  근데 걱정이다. 제22대 국회 같은 의석수 꽃놀이패는 제22대가 끝일까봐. 극우의 준동이 돌아올 총선까지 이대로 드라이브가 걸릴까봐. 

왜 딱히 요구하는 것도 없이 가라는 집에는 안 가면서

뭐라도 되는 양 자경단 노릇이야? 저런 걸 경찰이 잡아서 수사하고 송치해야 하는데. 출처 :  https://www.khan.co.kr/article/202606081127011 경찰은 뭐 하는 인간들인데 경찰도 아닌 자들이 사적으로 타인의 소지품을 검사하는데 내버려 둘 수가 있나? 저걸 다 현행범으로 체포했어야지. 특수협박이잖아.  경찰도 직무태만이다. 저런 사적인 소지품 검사를 용인한다고? 그게 경찰이 할 짓이냐? 미수범도 처벌한다고 협박죄는. 근데 심지어 소지품 검사도 한 거잖아. 이렇게 애매할 때 볼 만한 것이 형사 전문 로펌에서 '무죄 받아줄 수 있다'고 작성해놓는 광고들인데 협박죄가 성립하는 조건들에 대해서 피의자(또는 피고소인)가 이해하기 쉽게 잘 써놓았기 때문이다. 당장 구글이나 네이버에서 '특수협박'으로 검색하기만 하면 이런저런 쉬운 해설이 잔뜩 나오니까 필요하면 참고하시기 바란다. 아무튼 우선 협박죄는 유형력 행사가 없더라도  가해자가 고의로 "생명, 신체, 자유, 명예, 재산, 정조, 신용, 업무에 대한 일체의 해악"을 끼치겠다며 위협해서 피해자가 공포와 위협을 느꼈다면 성립한다. 그리고 주니어 국대팀이라고 하니까 이건 대체회가 나서서 민사도 걸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주니어 선수들이 얼마나 놀라고 당황하고 무서웠을까. 전부 심리적 지원도 해줘야 한다. 그리고 진지하게 말하는 거기 상황 제대로 통제 안 하는 경찰들은 심정적으로 한 패거나 사적으로 자경단 노릇은 금지되어 있다는 기본도 모르는 똥멍청이거나 하니까 꼭 상응하는 징계를 받기를.

2026년 6월 둘째주 임시회 국회일정

"제발 날 원내대표에서 잘라줘."라고 드러누움의 연속을 보여주던 송언석 씨가 마침내 내란순장조 원내대표 자리를 탈출하는 데에 성공했다. 더는 조롱 받기 싫었던 모양이다.   출처 :  https://news.tvchosun.com/site/data/html_dir/2026/06/05/2026060590292.html 조롱 받기 싫다고? 조롱 받을 일을 안 하면 될 텐데.(ft. 마리 앙투아네트) 여튼 내란순장조가 원내대표를 다시 선출해야 하는 고로 돌아오는 주간은 본회의나 상임위 일정이 전면 미정이다. 원내대표는 2026년 6월 9일 화요일에 선출한다고 하다가 너무 졸속이라는 반발 때문에 이틀을 연기한 11일 목요일에 선출한다는데 원구성 협상이 어찌 될까 모르겠다. 더구나 지금 내란순장조 외 모든 정당은 투표용지 부족 사건 국정조사에 합의한 상태여서 참 이게 어찌 될지... 일단 현재 출사표를 던진 건 김도읍( 링크1 ), 성일종( 링크2 ), 정점식( 링크3 ) 셋인데... 뭐 누구든 되겠지. 개인적으론 각자 정책위의장을 누구로 잡았을지는 모르겠으나 성일종 씨가 셋 중엔 유력해 보인다. 아마 당내 언더기득권에서 원하는 게 성일종 씨일 것. 1. 본회의 - 그리하야 이번 주엔 원구성 협상이 한창일 듯하여 열리지 않을 예정이다. 2. 위원회 - 위원회도 마찬가지. 3. 그 외 - 6/8(월) 10:00 국가위기 초대형 산불방지를 위한 전력설비 보호를 어떻게 할 것인가? - 6/10(수) 도서관 『법체계 길라잡이: 14개국 법체계 알기 쉽게 풀기』 발간                  예산정책처 「2026 대한민국 공공기관」 발간                  10:00 입법조사처 「최근 스토킹 전자감독 제도 개편과 피해자 보호 과제」 전문가 간담회 개최 ...

제22대 국회 후반기 조정식 의장 선출에 부쳐

2026년 6월 5일 제436회 임시회 제1차 본회의에서 조정식 의원(경기 시흥시 을, 6선)이 당선하면서 제22대 국회 후반기 의장이 되었다.  출처 :  https://www.yna.co.kr/view/PYH20260605105600013 시흥군은 원래 경기도에서 광주군과 함께 엄청 넓은 면적을 자랑하는 지역이었는데 인근 부천, 안산, 광명, 금천구 등에 땅을 나눠주고 현재의 행정구역이 되었다. 정치적으로는 제정구 벨트라고 분류할 수 있는데 조정식 의원이 제정구 의원실 보좌진이었다.  제정구는 누구인가.  출처 :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51393 고 제정구 의원은 도시빈민운동가다. 빈민운동의 대부라고 불리던 사람이다. 1970년대 초반부터 청계천 판자촌에서 야학에서부터 시작하여 민청학련 사건에 휘말려 투옥되기도 하였다. 1970년대 말,  청계천 판자촌이 강제철거되자 양평동으로 이주했는데 1980년대에 들면서 1986 아시안게임, 1988 서울올림픽 개최를 핑계로 서울의 판자촌을 강제로 철거하는 일이 많았다. 여기에 전경과 백골단이 자주 등장한다. 그리하야 양평동도 강제철거가 되면서 현재의 시흥 소래면(현재 신천동, 은행동)으로 이주하고 '복음자리 마을'을 만들었다. 이어 서울의 다른 판자촌도 강제철거가 되면서 시흥 쪽으로 계속 판자촌 강제철거로 인한 마을이 넓어졌다. 그리하여 제정구 의원은 1980년대에도 계속 이 빈민운동을 계속하다가 '민주헌법쟁취국민운동' 공동대표를 하면서 1987년 민주화 투쟁의 주도세력 중 하나가 되었다. 6·10항쟁 후 양김 단일화를 위해 노력했지만 끝내 양김이 분열하면서 노태우가 대통령이 되어버린 후에는 한겨레 민주당 창당 멤버로 들어가게 되었고 이후 시흥에서 국회의원으로 당선되기도 하는 등 정치활동을 했다. 자세한 건 검색해보면 나오니까 찾아보시면 되고 이때 제정구 의원실에 있던 사람들이 조정식, 김부겸 이런 사람들이...

이제는 남겨둘 수 있다?

예전에, 그러니까 약 15~6년 전쯤에 정치인 블로그 컨텐츠 작성해주는 일을 한 적이 있다. 지금 하는 일은 내 거를 쓰는 건데 그 일은 남의 거를 쓰는 거였지.  그 정치인에 대해서 내 나름대로 조사를 많이 하고 또 그 방 보좌진한테 취재를 하기도 해서 '영감에 빙의한 상태'로 글을 쓰는 것.  이제는 그 영감이 정계 은퇴를 하기도 했고 그 블로그를 지우기도 했고 해서 나의 기록용으로 한 번 적어둔다. 내가 이런 일을 했기 때문에 종종 파묘되는 잼칠라의 수제 블로그 포스팅을 보고 찐으로 터질 수 있는 거다. 그런 건 '빙의한 상태'로 쓸 수 없다. 찐만이 가능한 영역. 아래 글은 5·18을 앞두고 업로드한 글이었다. 참고로 춘추가 지긋하신 분들은 읽어보셨을 수도 있다. 이거 꽤 잘 나갔던 글이다. 포털 메인에 잠깐 걸렸을 정도로. 저는 불량 대학생이었습니다. 대학생이 되고나서 학교를 제대로 다닌 적이 거의 없었기 때문입니다. 1970년대의 대학이라는 곳이 그랬습니다. 한 편으론 민주화를 열망하는 학생들과, 다른 한 편으론 어찌할 수 없는 현실에 좌절하는 학생들이 모여있었던 곳, 막 막한 세상에 대한 열망과 열정으로 학사 주점 한 귀퉁이에서 술을 기울이던 시절, 저는 두 번 제적을 당하고, 1980년 '서울의 봄'이 왔을 때에야 겨우 복학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학교로 돌아왔다는 기쁨도 그리 오래가진 못했습니다. 당시 복학생들을 중심으로 학생회 부활운동과 학원 민주화 투쟁의 바람이 불면서 다시 쫓기는 신세가 되고 말았기 때문입니다. 1980년 5월 17일에 계엄령이 떨어졌습니다. 그로 인해 다시 수배자가 되었고, 이리저리 도피하면서 지내야 했습니다. 5월 18일, 그 날. 광주에서 그런 참상이 벌어지고 있는 줄은 꿈에도 알지 못 했습니다. 잘못된 쿠데타에 분연히 떨쳐 일어났던 시민들의 결연했던 의지도 알지 못 했습니다. 대한민국의 선량한 시민들이. 대한민국 군인의 총칼 아래 죽임을 당한 사실은 며칠이 지나서야 알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