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그러니까 약 15~6년 전쯤에 정치인 블로그 컨텐츠 작성해주는 일을 한 적이 있다. 지금 하는 일은 내 거를 쓰는 건데 그 일은 남의 거를 쓰는 거였지. 그 정치인에 대해서 내 나름대로 조사를 많이 하고 또 그 방 보좌진한테 취재를 하기도 해서 '영감에 빙의한 상태'로 글을 쓰는 것. 이제는 그 영감이 정계 은퇴를 하기도 했고 그 블로그를 지우기도 했고 해서 나의 기록용으로 한 번 적어둔다. 내가 이런 일을 했기 때문에 종종 파묘되는 잼칠라의 수제 블로그 포스팅을 보고 찐으로 터질 수 있는 거다. 그런 건 '빙의한 상태'로 쓸 수 없다. 찐만이 가능한 영역. 아래 글은 5·18을 앞두고 업로드한 글이었다. 참고로 춘추가 지긋하신 분들은 읽어보셨을 수도 있다. 이거 꽤 잘 나갔던 글이다. 포털 메인에 잠깐 걸렸을 정도로. 저는 불량 대학생이었습니다. 대학생이 되고나서 학교를 제대로 다닌 적이 거의 없었기 때문입니다. 1970년대의 대학이라는 곳이 그랬습니다. 한 편으론 민주화를 열망하는 학생들과, 다른 한 편으론 어찌할 수 없는 현실에 좌절하는 학생들이 모여있었던 곳, 막 막한 세상에 대한 열망과 열정으로 학사 주점 한 귀퉁이에서 술을 기울이던 시절, 저는 두 번 제적을 당하고, 1980년 '서울의 봄'이 왔을 때에야 겨우 복학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학교로 돌아왔다는 기쁨도 그리 오래가진 못했습니다. 당시 복학생들을 중심으로 학생회 부활운동과 학원 민주화 투쟁의 바람이 불면서 다시 쫓기는 신세가 되고 말았기 때문입니다. 1980년 5월 17일에 계엄령이 떨어졌습니다. 그로 인해 다시 수배자가 되었고, 이리저리 도피하면서 지내야 했습니다. 5월 18일, 그 날. 광주에서 그런 참상이 벌어지고 있는 줄은 꿈에도 알지 못 했습니다. 잘못된 쿠데타에 분연히 떨쳐 일어났던 시민들의 결연했던 의지도 알지 못 했습니다. 대한민국의 선량한 시민들이. 대한민국 군인의 총칼 아래 죽임을 당한 사실은 며칠이 지나서야 알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