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책 설계는 인간의 희생정신이나 양심에 기대면 안 된다. 김용익 전 의원이 예전에 어느 팟캐스트 나와서 본인이 한창 의대에서 공부할 때는 정부에서나 학계에서나 모두 민간의료가 자리잡아야 하고 다 개원의가 되기를 장려하고 그런 분위기였고 그게 오래 지속되었다고 말한 걸 들은 적이 있다. 지금 의료의 수도권/비수도권 격차는 그때 예견된 것이었을 거다. 의사에게 공공의료 종사자 같은 책임감과 직업윤리를 강요하지만 정부는 그에 따른 적절한 보상을 보장하지 않는다. 과거 그냥 의사가 절대적으로 부족했던 시절에야 의사들이 적정진료만 해도 과로사를 할 지언정 돈이라도 많이 벌었는데 저수가가 수십 년 지속되고 의사는 늘어나면서 과잉진료 등 부작용은 착착 늘었고 모든 자원과 인구가 수도권으로 집중되면서 당연히 의료도 수도권과 비수도권 격차가 커질 수밖에 없었다. 개원의든 대형종합병원이든 땅파서 수술하고 주사 놓는 것은 아니니 수도권에 집중되는 것이 어찌 보면 당연한 세상사에 흔한 영리 추구의 흐름이다. 성형외과 피부과 안과 집중. 압구정이니 신사동이니 즐비했던 성형외과도 이제 옛말. 최근 몇 년간은 설상가상 코로나 때문에 중국인도 못 오는 기간이 길었다. 그리고 이런 집중이 단순히 의사 집단이 너무 이기적이 영리추구만 하려고 한다고 비난하기엔 앞서 말해온 민간의료 위주의 유구한 역사가 있다. 드라마 '라이프'의 흉부외과 센터장 주경문(유재명 분) 극중 김해의료원(현실의 진주의료원)이 폐쇄되면서 상국대병원에 오게 되었다는 설정이었다. 수도권과 비수도권의 의료격차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수가현실화와 공공의료전달 체계 확립과 개편, 그리고 그 공공의료 체계에 투입되는 의사들에 대한 적정한 보상 수준과 지위 보장(적어도 작정하고 투신한 의사가 공공의료원이 문을 닫아 그만두는 일은 없어야 할 것 아닌가) 이 반드시 필요하다. 의대생 정원을 늘려서만 될 일이 아니다. 그렇다고 의대생 정원을 늘리지 말자는 이야기도 아니다. 저 문제를 같이 고민하지 않으면 앞으로도 영영 달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