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2월 3일. 내란 1주년이 되는 날에 국회 다크투어 피케팅에 성공해서 다녀왔다. 나의 Ex직장. 하지만 나도 이제는 인솔을 받는 참관객이 되어서, 하지만 수상할 정도로 익숙하게 국회 이곳저곳을 다녔다.
| 핫팩도 하나씩 주셨다. |
언론을 통해 많이 알려진 이야기는 말고 그 외의 이야기 위주로 인상적이었던 것을 기록해본다. 코스는 총 10코스였다.
1코스) 국회1문 앞
이쯤에 서서 설명을 시작했다.
언론에 많이 나서 잘 알려진 의장님이 키르기스스탄 대통령과 만찬을 마친 뒤 쉬다가 계엄을 확인하고 국회로 바로 출발한 이야기를 들었다. 11시쯤 도착했는데 이미 정문인 1, 2문은 차벽으로 가로막힌 뒤였고 간발의 차로 3문도 막혔었다고 한다. 키르기스스탄 대통령은 당일 오찬을 윤새끼와 했는데 그 날밤 그 새끼가 내란을 일으킨 걸 보고 다음날 바로 귀국했다고 한다. 거 진짜 손님 모셔놓고 무슨 결례인지.
| 도슨트가 되신 의장님 |
2코스) '국회의장이 비상계엄 해제를 위해 담 넘어간 곳'
의장의 차량도 막아서는 국회경비대에 화가 나서 내려 싸울까도 생각했지만 그러다 체포되면 큰일이니 참고 3문에서 100m쯤 더 가서 '넘을 만하겠다' 하고 찾은 곳이 바로 이쪽이라고 한다. 식물원 근처의 출입문. 정식 출입구는 아니고 평소에도 늘 닫혀 있는 문이다.
사진은 차규근 의원. 의장님보다 한 발 먼저 이쪽으로 월담을 했다고 한다. 그래서 의장님과 만나 의장님을 모시고 본청까지 이동했다는 설명을 해주었다. 사진 속 의장님 오른쪽은 의장님의 비서실장, 조오섭 비서실장(전 의원)이다. 중간중간 설명을 보충해주기도 하였다.
투어에 190명을 모집한 건 그때 계엄 해제 표결에 참여한 의원이 190명이어서 그런 것이라는 설명과 함께 초청된 분들에 대한 소개를 했다. 그 날 국회 앞에서 싸워주신 분, 군용차량을 막아주신 분, 키세스단으로 한남동에 계셨던 분들 손 들어주세요, 하고서 다같이 박수를 쳤다.
이 분이 누구신고 하니 의장님의 경호대장, 김성록 경호대장이다. 그 유명한 월담 우원식 선생 짤을 찍은 장본인.
'국회의장이 국회 담을 다 넘네!' 라는 자조적인 멘트를 듣고 뭔가 역사적인 순간인 것 같아서 바로 찍으셨다고 한다.
3코스) 국회 대운동장
707의 헬리콥터가 3대씩 8번이나 내렸다고 한다. 무려 24차례 착륙. 190명이 넘는 병력이 내렸다고.
이 분은 송서영 현 경호과장, 당시 방호과장님이다. 잠시 경호과와 방호과의 차이를 설명하자면 경호과는 회의장, 실내 위주 질서 유지가 주업무이고 방호과는 출입과 건물 외부 경계가 주업무다. 현재는 경호과지만 당시에는 방호과장이셨는데 그때 국회 본관 정면 2층 현관이 아수라장이었기 때문에 방호과와 보좌진, 취재진, 사무처 직원할 것 없이 그쪽 방어에 정신이 없어 처음에는 헬리콥터 소리도 듣지 못 하셨다고 한다. 그랬는데 후면 출입구쪽에 있던 방호과 직원들이 '국회 운동장에 헬기가 내려서 계엄군이 온다'는 전화를 걸었고 '일단 무조건 막아라'고 지시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당시에는 전혀 몰랐으나 나중에 영상을 보니 상대는 총을 들고 무장을 한 군인이고 방호과 직원들은 아무런 무기도 화기도 없는 맨몸이라 무조건 막으라는 지시를 내렸던 것이 너무나 미안하고 죄책감을 오래 느끼셨다고 한다. 설명을 듣고 모두 뭔가 뭉클해져서 박수를 쳤다.
4코스) 계엄군의 발자취(?)를 따라 본청 뒤편 출입구
대운동장에서 계엄군이 올라간 경로 그대로 본청을 향해 걸어서 이동했다.
조금 전 경호과장님이 설명한 상황이 벌어진 바로 그 장소이다. 일단 어떻게든 막으라는 지시를 받은 방호과 직원들은 아무래도 상대가 총을 들었으니 처음에는 주춤주춤 물러섰는데 한 분이 달려들어 말 그대로 육박전을 벌였고 다른 방호과 직원들도 맨몸으로 거의 패싸움을 하다시피 싸웠다고 한다. 어떻게든 뒤로 물러서게 해서 시간을 좀 번 사이에 지원하러 온 다른 보좌진과 사무처 직원, 당직자 등이 바리케이드를 쌓고 막았다고 한다.
5코스) 본청 3층 로텐다홀
엄밀히 로텐다홀<- 이것은 말이 안 되는 거지만 그냥 통칭 로텐다홀이니까 로텐다홀이라고 하겠다.
| 다크투어 스팟마다 이렇게 사진과 설명이 있었다 |
여기서 모든 보좌진, 당직자, 사무처 직원, 기자들이 다 스크럼 짜고 달려가 막았던 이야기를 했다. 정현관 막고 본관 2층 후면 막고 난리였다가 창문 깬 다음에는 본회의장만은 지키자며 스크럼 짜고 막았다는 이야기. 정을호 의원은 당직자 출신으로 당시에 분말 소화기를 쏴서 막은 이야기 등을 했고, 김원이 의원은 보좌진 출신으로 10년 이상 일한 보좌진들 손 들어보라고 해서 본청 출입하는 경로를 잘 알 테니 그 위주로 인원 분배를 해주었다고 한다. 두 의원들 모두 민주주의를 지켜주신 시민 여러분 덕분이었다고 감사 인사를 했다.
| 정을호 의원(비례대표) |
| 김원이 의원(전남 목포) |
김원이 의원이 국회선진화법 이전에 동물국회이던 시절 보좌진을 했는데 그 당시에 몸싸움하던 시절 본회의장 점거하고 그럴 적에 밀고 들어오던 쪽이 어떻게 들어왔었지? 한 걸 떠올리면서 인력을 분배했다고 한다.
6코스) 본회의장
4층 참관석에서 보면 이렇다.
여기서 의장님이 정부로부터 계엄령을 선포했다는 보고가 오지 않아 안건이 없는데 계엄을 어떻게 해제할 것인가의 문제가 있었다고 설명을 시작했다. 의장님 생각으로는 아마 해제를 못 하게 할 생각으로 일부러 보내지 않은 것 같다고. 여튼 그래서 계엄을 해제하려면 어떻게 해야 절차에 하자가 없겠는가, 이걸 법안으로 할 것이냐, 그렇게 하면 법적 효력은 강력하지만 국무회의와 공포 과정이 필요하니 시간이 지체되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다, 그러면 결의안으로 할 것이냐, 결의안은 구속력이 약하지 않을까, 이런 것들을 엄청 논의했다고 한다. 결국 이 상황을 타개할 방도는 국회법 전문가 의사국장님이 '전례가 있다. 6·3사태(1964년 한일협정 때문에 학생 등이 반발하며 촉발된 사태) 때 계엄령을 여야 합의로 결의안을 통과시켜 해제한 바가 있다'고 하셔서 그쪽으로 정해졌다고 한다.
| 설명 중인 의장님 오른쪽이 의사국장님, 직접 설명도 해주셨다 |
언론에 많이 나온 의장석에서 욕 많이 먹었다는 이야기, 회의 시간, 표결시간 정하는 이야기, 당긴 이야기 등을 들었다. 후... 이런데 추경호가 구속이 안 됐다니.
그리고 이제 우원식tv로 대국민 담화한 이야기 5층에 숨었는데 모든 층, 모든 방 불을 다 켜고 다닌 이야기, 그러느라 직원들 손톱이 부러진 이야기 등도 들었다. 불을 다 켜자고 한 사람은 조오섭 비서실장이었다고.
계엄해제 됐단 소식이 없어서 의장석에서 대기하다가 한거킨과 통화해서 해제를 확인하고 '산회'가 아닌 '정회'를 했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2차 계엄을 할까봐 그랬던 것이다. 왜냐면 국회에는 1일 1차 회의의 원칙이 있기 때문에.
7코스) 본청 2층 정현관 앞
아마 가장 뉴스에 많이 등장한 장소가 아닐까?
이곳에서는 김민기 사무총장이 직접 당시 상황에 대해서 잠시 설명하고 함께 막아주신 시민에 대하여 깊이 감사드린다는 인사를 하였다. 그리고 진짜 조금씩 조금씩 틈을 내어서 담 넘고 싸워서 들어온 국회의원들을 본청 안으로 들여 보냈는데 잘 들어가 주셔서 다행이었고 감사했다고.
거의 보자마자 707인 걸 아셨다고. 본인이 특전사 출신이셔서 그런 듯하다. 여기까지 나왔으니 다음 코스는 바로 거기다.
8코스) 깨진 유리창
깨진 유리창 이론이라는 게 있는데 그건 딴 소리고 아무튼 국회는 이제 이곳을 깨진 그대로 보존한다고 한다.
영상으로는 많이 봤지만 실제로 보니 꽤나 충격적이었다. 더구나 나는 민정당 의원실 일할 적에 저 공간에 일하러 간 적도 있었으니까. 김민기 사무총장 말로는 cctv로 확인해보니 계엄군이 건물 좌측부터 창문이 몇 칸인지 세고 저 창문을 깼다고 했다. 정확히 원하는 위치가 있었다는 것으로 추정할 수 있는 대목이다.
그리고 여기서 한 사무처 주무관님이 보충설명을 해주셨는데 (이러저러한 사정 상 사진은 못 찍었다.) 유리창 깨고 들어온 계엄군 중 두 명을 막 두 팔로 목을 감아 잡고 늘어져서 어떻게든 시간을 지연시켜 보려고 애쓰신 분이셨다. 세상에 소총 든 군인을 맨몸으로 그냥 붙들어서. 대체 그런 용기가 어디서 나십니까. 손도 다치고 부상을 입었다고 하시던데 진짜 존경스러웠다. 의장님 말씀처럼 국회 직원들이나 보좌진이나 다들 그냥 직장으로 국회 다닐 수도 있지만 다들 입법부를 지킨다는 책임감과 사명감을 다 해서 그 날 막았다고 한 건 정말일 거다. 나는 정말 불가촉천민 나부랭이였는데도 항상 '그래도 여기가 국회인데'라는 걸 가지고 있었거든. 그런 존엄을 정말 갖게 되는 직장이 맞다. 적어도 내 경험은 그랬고 1년 전에 용기 있게 막은 분들은 더욱 대단했을 것이다.
9코스) 국회 상징석
2차 계엄에 대한 우려가 커서 의장님은 당분간 퇴근을 안 하고 국회에서 라꾸라꾸를 펴놓고 자면서 숙식을 했다. 그 기간 동안 혹시나 2차 계엄이 터지면 바로 또 본회의를 소집해야 하니까. 또 만약의 사태에 대비해서 이학영 부의장과 어떻게 의사진행을 할 것인가에 대해서도 마련해두었다고 한다.
그 기간 동안 매일 국회 주변을 걸어다녔는데 둘레를 다 돌면 2.5킬로 정도 된다고 한다. 그렇게 돌다가 그냥 방치되어 있던 저 바위를 발견하고 이 상징석을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하셨다고 한다. 저 돌은 한참 그냥 방치가 되어 있던 건데 사려면 또 엄청 비싸다고 한다. 여튼 그래서 2025년 제헌절에 설치하면서 아래에 타임캡슐을 묻고 100년 뒤에 열기로 했다고 한다. 100년 뒤의 국회의장에게 편지도 써두셨다고.
10코스) 독립기억광장
2025년 광복절에 설치된 조형물이다.
유명한 사람이야 이름이 남지만 내란의 밤에 국회 앞에서 싸워준 시민과 한남동의 키세스단, 빛의 혁명의 응원봉 시위대는 이름도 없이 나라를 구했는데 이 시민정신의 정신이 어디서부터 왔나 의장님이 생각해봤는데 거슬러 올라가면 이름도 없이 나라를 구한 독립의병에서부터라는 생각이 들어서 그 정신을 기려야 한다는 생각으로 계획해서 만들었다고 한다.
큰 비석 같은 조형물 두 개로 이루어져 있는데 각 높이가 10.21미터, 10.26미터라고 한다. 청산리대첩의 시작과 끝날이다. 둘 사이에서 국회 본청의 돔이 보인다. 참고로 국회의 돔은 민의가 하나로 모인다는 의미이다. 그리고 그 길은 좁은 길이라 결코 쉽지 않지만 빛을 향한 길이라고 해서 안쪽에 조명도 설치가 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안에 하나하나 붙은 것은 이름 모를 용사들을 뜻한다고 하며 안에도 무늬가 있어서 의미를 담고 있다. 직접 가서 보면 더 이해가 쉬울 것이다.
앞뒤에는 각각 뭉클한 글귀가 써있다.
보초 따위는 필요 없습니다. 주변의 모든 사람들이 우리를 지켜주고 있으니까요.
죽을 수도 있겠지요. 그래도 좋습니다. 일본의 노예로 사느니 차라리 자유인으로 죽는 게 더 낫습니다.
- 종군기자 맥켄지가 만난 항일의병의 목소리
당당한 독릷군으로 몸을 탄연포우(彈煙砲雨) 중에 던져 반만년 역사를 광영케 하며,
국토를 회복하여 자손만대에 행복을 누리게 함이 우리 독립군의 목적이요
또한 우리 민족을 위한 본의라
- 대한독립군 유고문 중
그리고 이 광장을 둘러싼 색색의 돌담이 담은 의미도 설명해주셨는데 이건 가서 보면 더 의미가 깊을 것.
특별히 이곳에서는 백범 선생의 증손인 김용만 의원이 소회를 말하기도 했다.
추웠지만 역시 오길 잘 했다고 생각한 시간이었다. 많이 달라진 국회 모습을 보니 이제 진짜 내가 외부인이 됐구나 그런 생각도 들고 마지막에 가서는 이름 없이 스러져간 독립의병도 자신이 되찾고자 한 나라가 민주공화국이라는 것을 믿어 의심치 않았구나, 라는 벅찬 생각이 들어서 울컥하기도 했다.
매년 운영해도 좋은 행사일 듯하다. 그리고 나는 다시 한 번. 앞으로도 영영 국회를 좋아할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진짜_마지막.jpg
국회 다크투어 기념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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