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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를 모르고 정치를 싫어하고 하지만 권력이 갖고 싶었던

하지만 권력으로 하고 싶은 게 죄다 사사로운 일들뿐이었던 무리가 내란을 일으킨 게 2024년 12월, 그리고 이 포스팅이 올라가는 날이 2025년 12월 3일. 1년이 되었다. 지난 1년은 나에게 어떤 의미였나, 역시 생각해보지 않을 수가 없다.

ⓒ시사IN 조남진 출처 : https://www.sisain.co.kr/news/articleView.html?idxno=56910

집에서 그냥 블루스카이 하면서 놀며 뒹굴거리던 밤이었는데 갑자기 타임라인에 블친들이 '지금 비상계엄이라는데?' 같은 말을 시작했다. 아마 많은 사람이 그랬겠지만 나 역시 '무슨 자다가 봉창 두들기는 소리야?' 하는 반응이었다. 아무런 전쟁의 징후가 없었는데 무슨 비상계엄?

일단 내가 사는 서식지는 성남비행장과 가까웠고 전쟁이 났다면 나는 모를 수가 없거나 전쟁이 난 것을 알 수 없게 이미 죽어있을 확률이 높았기에 전쟁이 아니라는 건 확실했다. 근데 무슨 놈의 비상계엄이야?

그러고 속보를 찾아보는데 사실이었다. 이런 망할.

그렇다면 확실했다. 윤새끼가 미쳐서 영구집권이라도 하겠답시고 일을 벌였구나. 그리고 바로 드는 생각은 솔직히 딱 하나였다. 

'왜 오늘이지?'

시간대가 밤인 것은 이해할 수 있었다. 대응을 늦추려면 대낮보다야 밤이지. 하지만 왜 12월 3일이었을까? 

나는 국회의 달력을 기준으로 생각할 수밖에 없는 사람이다. 정치권의 시계와 달력은 국회의 일정이 가장 기본이다. 12월 3일이라는 날짜는 국회를 기준으로 생각하면 너무 이상한 날짜라는 것을 부정할 보좌진은 거의 없을 것이다. 

계엄을 선포한 정부가 스스로 해제하지 않는 이상 합법적으로 해제할 권한이 있는 건 국회뿐이다. 그런 관점에서 만약 내가 내란수괴고 내란을 성공시키겠다고 하면 나라면 12월 3일 같은 날짜는 잡지 않았을 것이다. 

정기국회 회기 중이기 때문이다. 그것도 예산안 표결을 앞두고 여야의 옥신각신이 한창인 타이밍. 여야 모두가 여차하면 휴일에라도, 야밤에라도 상임위, 예결위, 본회의를 열고 처리를 하기 때문에 당에서 대체로 위수령을 내리는 시기이다. 주말에나 겨우 지역구에 갈까말까지, 주중에는 여의도에서 아주 멀리 떨어진 곳에는 가지 말라고 한다. 하물며 주중 밤이면 충청권에서 택시를 타도 1시간~1시간반 정도면 충분히 여의도까지 뚫을 수 있다. 본회의만 열릴 수 있다면 헌법적으로 계엄해제는 굉장히 간단한 편이다.

그랬기 때문에 처음에 더욱 더 계엄령이 떨어졌다는 사실을 믿기가 어려웠다. 쉽게 해제될 계엄으로 친위 쿠데타를 할 판단을 내릴 바보가 어디 있느냐는 말이다. 하지만 윤새끼는 그런 사람이었던 거다. 정치를, 정치권을 모르고 싫어하고 알고 싶어 하지도 않는. 그리고 그 결과가 2시간반짜리 계엄이었다. 

그리고 이 모든 말도 안 되는 택일이 단순히 정치에 대한 혐오와 무지의 산물이 아니라고 한다면 답은 하나다. 더 늦출 수가 없는 이유가 있었다는 것. 사실 모두가 처음부터 이 말도 안 되는 내란이 누구 때문에 비롯된 것인지 심증만은 가득했고 이렇게 논리적으로 따져봐도 납득이 가능한 설명은 대략 한 가지뿐이다. 무려 아직까지도 직접적 연결고리를 찾지는 못 했지만 말이다.

나는 국회에서 법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고 그래서 싸대 법대에 갔던 거라고 봐도 틀림이 없다. 국회에서 일한 적이 없었다면 나는 결코 법에 그만큼 관심을 가질 일이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법의 기초 정도를 겨우 익히고 싸대 법학사가 된 나는 포고령을 보고 어이를 상실하고 말았다. 


자유대한민국 내부에 암약하고 있는 반국가세력의 대한민국 체제전복 위협으로부터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하고, 국민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 2024년 12월 3일 23:00부로 대한민국 전역에 다음 사항을 포고합니다.

1. 국회와 지방의회, 정당의 활동과 정치적 결사, 집회, 시위 등 일체의 정치활동을 금한다.

2.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부정하거나, 전복을 기도하는 일체의 행위를 금하고, 가짜뉴스, 여론조작, 허위선동을 금한다.

3. 모든 언론과 출판은 계엄사의 통제를 받는다.

4. 사회혼란을 조장하는 파업, 태업, 집회행위를 금한다.

5. 전공의를 비롯하여 파업 중이거나 의료현장을 이탈한 모든 의료인은 48시간 내 본업에 복귀하여 충실히 근무하고 위반시는 계엄법에 의해 처단한다.

6. 반국가세력 등 체제전복세력을 제외한 선량한 일반 국민들은 일상생활에 불편을 최소화할 수 있도록 조치한다.

이상의 포고령 위반자에 대해서는 대한민국 계엄법 제9조(계엄사령관 특별조치권)에 의하여 영장없이 체포, 구금, 압수수색을 할 수 있으며, 계엄법 제 14조(벌칙)에 의하여 처단한다.

2024. 12. 3.(화) 계엄사령관 육군대장 박안수


일단 포고령 제1항과 제2항이 서로 모순된다. 국회와 지방의회와 정당 활동과 집회, 시위 등 일체의 정치활동을 금하는 게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부정하고 전복을 기도하는 것이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헌법과 헌법정신에 위배되고 계엄법을 위반하고 있다. 그런 좀 거시적인 이야기를 잠시 미뤄둔다면 사실 가장 피부에 와닿는 어이없음 1등은 제5항이었다. 이렇게 전공의라는 작은 집단을 명시해서 무려 '처단'하겠다는 게 포고령 내용이라니. 포고령 위반에 대해서 계엄법으로 다스리겠다니, 포고령이 계엄법을 위반하고 있는데 말이다. 어느 면으로 보나 말도 안 되는 것 투성이였다.

국회에 일하면서 나는 일류대학, 심지어는 외국 대학에서 박사학위까지 했다는 소위 엘리트나 지식이라고 하는 사람들의 민낯을 많이 봤다. 고매한 학문을 연구하던 학자이자 교수, 고시를 몇 개씩 패스한 판검사 출신, 민원인은 존재조차 유추하기 어려운 고위 공무원, 어렸을 때부터 난다긴다 하던 신동이나 천재, 학생운동의 히어로 등. 그러다보니 진짜 그런 학벌이나 고시 이런 것에 대한 환상이 0이 아니라 -1로 수렴한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이제 윤새끼가 사례를 하나 더 추가해준 것이다. 그놈의 사시 패스한 머저리가 이미 백 트럭쯤 되는데 심지어 그 시험마저 9번이나 봐야 했던 상멍청이가 내란수괴라는 엄청 더 강력한 사례를. 

그 내란 우두머리가 그렇게 친위 쿠데타를 해서 가지려던 건 궁극적으로 뭐였을까. 가장 직접 손에 쥐는 건 말도 안 되는 큰 권력인데 그 일당은 그걸로 뭘 하려고 들었을까. 용기 있는 사람들이 빠르게 나서주었고 몇몇 사람의 선견지명과 빠른 판단 덕분에 유혈사태 없이 불법계엄은 빠르게 마무리가 되었지만 만약 저 자들이 악한 쪽으로 조금 더 유능했다면? 그 자신들은 그 어떤 모든 이러저러한 나쁜 짓을 해도 다 괜찮은 지극한 불평등의 세상을 원했을까? 도대체 악이라는 건 왜 그렇게 유치한 마음으로 끔찍한 결과를 가져올 짓거리들을 거리낌 없이 하게 하는 것일까? 

어쨌든 법이라는 건 최소한의 도덕이요, 논리와 이성의 끝판왕이 아니라 최후저지선 같은 것인데 이 모든 걸 망쳐 버리는 기회주의자들의 패악질이 이렇게 1년 동안 계속되고 있다. 어찌저찌 수괴를 대통령 자리에서 끌어내리긴 했지만 저 일류대학 나오고 몇십 년 전 고시를 패스했다는 이유로 수십 년 동안 기득권을 누려가며 기회주의자로 살아온 자들의 행패로 내가 살아온 공화국을 없애려 든 저 인간들의 편에 서서 어떻게든 판세를 뒤집으려는 자들이 대놓고 내란을 지속시키고 있다. 

요즈음 내란 순장조에서는 '아직 사법적 판단이 안 나왔으니 내란이 아니다'라고 말하는 게 유행인가본데 헌법재판소의 불법계엄이라는 판단은 '최고법원의 사법적 판단이 아니'라는 뜻인가? 왜 헌법이 규정한 이 나라의 최고법원 권위를 무시하는가? 그 발언만으로도 위헌정당임을 자백하는 꼴이다. 

좋아하는 영화 중에 '400번의 구타'라는 영화가 있다. 프랑스 영화로 원래 제목은 'Les Quatre Cents Coups'이다. 여기서 coups가 바로 쿠데타라고 할 때의 쿠다. 주먹질 같은 종류의 폭력을 보통 뜻한다. 국가나 정부라는 뜻의 État와 결합해서 coups d'État, 즉 국가에 폭력을 가한다는 말이다. 그리고 이 국가의 가장 주요한 구성요소가 바로 모든 시민이다. 쿠데타는 말 그대로 모든 시민에 대한 직접적 폭력이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니? 군대가 '임무', '작전'의 이름으로 투입이 되었다. 무장하지 않은 일반 시민과 충돌이 있었다. 그 과정에서 다친 국회 직원이나 보좌진, 언론인들도 있다. 모든 시민이 저 반헌법적인 포고령을 실시간으로 모두 보고 들었는데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는 게 대체 무슨 말인가. 

내란 1년. 내게는 법 체계에 대한 최소한의 신뢰가 녹아내리는 과정의 연속이고 그 시작이 저 불법계엄이었다. 내란세력에 대한 엄벌과 무관용만이 모든 시민의 PTSD를 낫게 해줄 유일한 방안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정치를 모르고 정치를 싫어하고 하지만 권력이 갖고 싶었던, 하지만 권력으로 하고 싶은 게 죄다 사사로운 일들뿐이었던 무리에게 돌아갈 것은 감옥에서 맞을 차디찬 죽음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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