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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 회의록시스템이 개선되어서 DJ의 연설을 찾아보았다

최근 국회회의록시스템이 전면 개선되었다. (링크) 솔직히 예전에는 내가 국회 체계가 어떤지 아니까 이걸 찾지, 아니면 좀 불친절하겠다 싶은 체계와 모양이었는데 이제 전보다는 훨씬 직관적이 되었다.
여튼 그런 김에 좀 오래된 자료를 찾아보고 싶어졌다. 내가 국회에 처음 발을 들인 게 제17대였어서 그 이전 기록이 궁금했다. 평민당 시절 김대중 의원의 연설이 뭐가 있을까 하다가 모래밭에서 바늘 찾기에 가까워 비교적 가까운 과거부터 찾기 시작했다. 제16대 국회.

그러다 개원식에 대통령 연설이 있기에 반가움에 연설문을 좀 옮겨와본다. 우리가 어떤 대통령을 두었었는지 한번 상기해보자는 뜻으로. 이 이상으로 퇴보하지는 말자.


솔직히 읽으면서 가장 놀란 건 '세상이 앞으로 이러저러하게 변화할 텐데 정부가 그걸 대비해서 이렇게 저렇게 하겠습니다'라고 한 게 실제 그렇게 된 부분이 많다는 것이다. 그리고 가장 통탄스러운 건 남북 화해와 협력을 위한 노력을 저렇게 했었는데 지금의 상황이 이렇다는 것. 그렇다. 


대한민국 제15대 대통령 김대중의 2000년 6월 5일, 제16대 국회 개원 연설이다.

(지금 기준으로 보면 조금 씅에 안 차는 부분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저 땐 2000년이었다. 감안하자.)



존경하는 이만섭 의장, 그리고 의원 여러분! 

  존경하는 최종영 대법원장, 이한동 국무총리서리, 기타 내외귀빈 여러분!

  또한 존경하는 방청객과 국민 여러분!

  의원 여러분에 대해서 먼저 여러분의 영광스러운 당선을 진심으로 축하말씀드립니다.

  또한 16대 국회가 여러분의 애국심에서 우러나온 헌신적인 활동으로 대한민국의 발전과 영광을 위해서 국민이 기대한 바대로 크게 공헌할 수 있기를 충심으로 바라마지 않습니다. 


  존경하는 의원 여러분!

  영국의 한 저명한 철학자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역사는 모든 민족에게 기회를 준다. 그러나 그 주어진 기회를 선용하지 않은 민족에겐 역사는 반드시 무서운 징벌을 내린다”고 말입니다. 

  저는 그 뼈아픈 교훈을 우리 역사 속에서도 찾게 됩니다. 

  조선왕조 19세기 후반의 대원군 시절에 우리는 일본과 거의 대등한 국력을 가졌습니다. 그러나 역사의 흐름에 대한 대응의 차이로 두 나라가 겪었던 운명은 너무나도 대조적이었습니다. 

  그 당시의 역사는 두 나라 모두에게 노도와 같이 밀려오는 서구문물의 위력 앞에서 국민적 단합과 근대화의 적극적인 실천을 요청했습니다. 그것이 시대의 흐름이었고 역사가 부여한 소명이었습니다. 

  그러나 불행히도 우리는 이러한 소명에 부응하지 못했던 반면 일본은 성공적으로 적응해서 동양의 강국으로 부상할 수 있었습니다. 

  그 결과 우리는 일본에 국권을 빼앗겼고 35년간의 식민통치라는 치욕을 겪어야 했습니다. 일제통치의 결과는 해방 후에도 국토분단의 청천벽력 같은 비극을 우리에게 가져왔습니다. 

  그리고 국토분단은 6·25전쟁을 일으켰고 6·25전쟁은 휴전이래 오늘날까지 200만의 대군이 서로 일촉즉발의 살얼음판에서 대치하게 하는 엄청난 불행과 부담을 우리 민족에게 안겨주고 있습니다. 

  한 시대 조상들의 잘못이 100년의 통한을 후손들에게 남겨주게 되었다는 역사의 뼈저린 교훈을 우리는 실감하게 됩니다. 

  오늘 우리 국회는 다짐해야 합니다. 우리는 두 번 다시 이러한 역사의 소명을 저버리는 과오를 범하지 않음은 물론 역사의 요구에 충실히 부응하여 국가의 번영과 통일로의 전진을 이룩하는 16대 국회가 되겠다고 마음속 깊이 결심해야겠습니다.


  존경하는 의원 여러분! 

  이제 새롭게 21세기를 맞이한 우리에게 역사는 무엇을 요구하고 있습니까?  역시 두 가지를 엄숙히 요구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요구는 우리에게 또 한번의 기회이자 경고가 되고 있습니다. 

  하나는 일류 역사상 최대의 변화인 지식정보화 혁명에 솔선해서 적응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남북이 화해와 협력속에 민족이 단합하여 공존공영하는 것입니다.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20세기는 자본과 노동과 토지 등 눈에 보이는 물질이 경제의 핵심이었습니다. 그러나 21세기는 지식과 정보와 문화창조력이 모든 것을 결정합니다. 

  다행스럽게도 지식정보화 시대를 맞이하는 우리는 세계 일류국가로 나아갈 수 있는 민족적 저력을 지니고 있습니다. 우선 세계 어느 나라, 어느 민족보다 우리는 높은 교육열과 탄탄한 지적 기반을 가지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 민족은 풍부한 문화창조력으로 독특한 문화전통을 만들어 왔습니다. 중국으로부터 불교를 받아들이면 해동불교로 발전시켰고 유교를 받아들이면 조선유학으로 발전시켰습니다. 

  우리의 불교는 그 교학면에서 중국불교를 압도했고 우리의 유교는 중국유교를 한 단계 높은 경지로 발전시켰습니다. 이러한 우리의 저력과 특성은 21세기 지식정보화 시대에 탁월한 창조력으로 되살아나고 있습니다. 

  이렇듯 21세기는 지식민족·문화민족으로서 우리 한민족의 장점이 가장 잘 발휘될 수 있는 시대입니다.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인터넷 사용자 수가 늘어나고 있습니다. 

  현재 1,500만명 수준인데 연말까지는 2,000만명이 넘을 것입니다. 그리고 머지 않아 어린이와 최연로자를 뺀 전국민이 인터넷을 사용하게 될 것입니다. 

  지금 초·중등학교에서는 가정형편에 상관없이 전면적으로 컴퓨터를 교육시키고 있으며, 200만의 주부들이 정보화 교육을 받고 있습니다. 65만의 현역군인들도 제대할 때 2급 정보검색사 자격증을 받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교도소에서까지 정보화 교육이 추진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정보화 개혁은 우리가 지금까지 추진해온 4대 개혁, 즉 금융·기업·공공부문 그리고 노사분야의 개혁과 더불어 우리 경제를 세계 일류경제로 진입하게 할 것입니다.

  의원 여러분!

  우리는 산업혁명에는 뒤졌지만 정보화 혁명에는 반드시 성공해야겠습니다. 오늘의 국민적 정보화 열기를 더욱 뜨겁게 하여 한국을 세계적인 정보화 강국으로 만드는데 반드시 성공합시다.

  또한 단순히 지식정보산업의 육성만이 아니라 전통산업도 지식정보산업을 이용하여 고부가가치·고효율의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추도록 힘써야 하겠습니다.

  현재의 한국경제는 물가·금리·성장률 등 각종 거시지표로 볼 때 상당히 좋은 양상을 보이고 있습니다. IMF 등 국제금융기관들도 이를 인정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정부는 결코 자만하거나 방심하지 않겠습니다. 앞으로도 금융·기업·공공부문·노사관계의 개혁과 지식정보화를 더한층 촉진시켜서 우리 경제가 세계시장에서 자신있는 경쟁력을 이룩할 때까지 정부는 개혁의 고삐를 결코 늦추지 않겠다는 것을 여러분에게 다짐하는 바입니다. 

  이렇게 할 때 우리 한국은 분명 세계 일류국가로 도약할 수 있는 충분한 가능성이 있습니다. 세계 많은 전문가들도 그 가능성을 부인하지 않고 있습니다. 

 존경하는 의원 여러분!

  지금은 우리 모두 그 가능성을 확신하고 여야와 정부 그리고 국민이 힘을 하나로 모아야 할 때입니다. 

  여야를 초월해서 국가를 위하여 의원 여러분의 아낌없는 지원을 간곡히 호소해 마지않습니다.


  존경하는 의원 여러분!

  역사가 우리에게 요구하는 또 다른 하나는 남북간의 화해와 협력입니다. 

  이제 며칠 후면 55년만에 처음으로 남북간의 정상회담이 열리게 됩니다. 참으로 오랜 세월 기다려오던 우리 민족의 대사건이자 큰 경사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우리는 한핏줄의 단일민족입니다. 하지만 세계에서 유일하게 분단의 상황속에서 동족간에 극한의 적대관계를 계속해왔습니다. 이 어찌 부끄럽고 비통한 일이 아니겠습니까? 

  이는 또한 1300년 통일국가를 이어온 우리 조상들에게 한없이 죄송스러운 일이며, 미래의 후손들에게도 부끄럽기 짝이 없는 일인 것입니다. 

  우리는 공산주의를 단호히 반대합니다. 그러나 동족간의 증오와 대립의 시대로부터 이해와 협력의 시대로 나아갈 역사적 시점에 지금 와 있다는 것을 나는 여러분에게 강조하고 싶습니다.

  21세기는 세계적 경쟁의 시대입니다. 힘을 민족 내부에서 탕진할 여유가 없습니다. 우리는 대한민국의 안보와 정체성을 확실히 견지해 나갈 것입니다.

  그러나 동족간의 화해와 협력 속에 평화와 번영 그리고 장차의 통일에 대비하라는 역사적 소명을 받들 때가 왔다는 것을 저는 의원 여러분에게 강조하고자 하는 바입니다.

  저는 이번 정상회담의 성사로 남북의 대표가 서로 만나게 된 것 자체가 역사적 대전기라고 생각합니다. 55년의 적대와 반목을 생각할 때 남북의 정상이 만나는 것만으로도 성공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저는 이 만남이 한반도에서 평화와 화해협력의 출발점이 되도록 저의 정성과 노력을 다 하겠다는 것을 여러분 앞에 굳게 다짐하는 바입니다.

  그러나 한꺼번에 많은 일을 다 하려고 서두르지 않을 것입니다. 

  베를린 선언의 기조 아래서 착실하게 회담을 추진할 작정입니다. 베를린 선언에서 저는 남북간 평화와 냉전의 종식을 주장했습니다. 북한을 지원하기 위한 경제협력도 약속했습니다. 리산가족 문제의 해결을 주장했고 남북한 상설기구를 두어서 계속적인 교류와 협력을 추진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저는 이번 회담에서 서로 모든 문제를 격의없이 논의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합의에 있어서는 가능한 일부터 성사가 되도록 하겠습니다. 합의 안 된 것은 2차, 3차 회담에서 처리해 나가도록 할 것입니다.

  남북간의 화해와 협력을 위해서 쉬지 않고 노력하되 돌다리도 두드려가면서 건너가는 신중함이 필요합니다. 그리하여 어떠한 차질도 없이 역사가 우리에게 요구하는 민족적 화해와 협력을 성공적으로 수행하는 데 총력을 다해야겠습니다.


  존경하는 의원 여러분!

  제가 앞으로 남은 임기동안에 꼭 성취하려는 국정목표에 대해서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저는 앞서 말씀드린 경제와 남북문제를 포함해서 5대 목표를 성취하고자 합니다. 

  무엇보다 먼저 이제 굳건히 뿌리 내리기 시작한 이 나라의 민주주의를 보다 큰 나무로 키워내고 세계에 자랑할 수 있는 인권국가를 여러분과 같이, 국민과 같이 반드시 이룩하겠습니다.

  저는 일생을 독재와 싸웠습니다. 다섯 번의 죽음의 고비와 6년의 감옥생활 그리고 수 십 년의 박해 속에 살아야 했습니다. 저는 이러한 시련의 세월을 헛되이 하지 않기 위해서도 모든 국민이 민주적 권리를 완전하게 누리도록 하는 데 저의 최선을 다할 굳은 결심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말씀드리는 바입니다.

  둘째는 이미 말씀드린 대로 흔들림없이 경제개혁을 완수하고 한국을 세계의 지식정보강국으로 부상시키는 것입니다. 

  셋째는 생산적 복지를 정착시키는 일입니다. 

  국민의 기초생활을 보장하고 일할 수 있는 모든 사람들이 지식정보화 교육을 통해 고부가가치를 창출하고 고소득을 얻을 수 있는 신지식인이 되도록 하겠습니다. 

  국민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기 위해서 문화·관광·스포츠·레저·환경 등을 개선할 것입니다. 

  그리하여 빈부격차를 해소시키고 모든 국민이 생활의 안정과 삶의 만족을 느낄 수 있는 생산적 복지를 이 나라에서 반드시 실현하는 데 앞장서겠다는 것을 여러분에게 다짐하는 바입니다.

  넷째는 국민적 대화합을 이룩하는 것입니다.

  계층간·지역간·세대간의 갈등을 해소하고 서로 화합하고 협력할 수 있도록 앞으로도 계속해서 최선의 노력을 다할 것입니다. 

  지금은 세계가 하나 된 지구촌시대입니다. 남북이 화해와 협력으로 나아가려는 시점입니다. 국내에서 서로 화합하지 못한다면 어찌 이런 일들이 이루어지겠습니까.

  여러분과 저는 다같이 큰 책임감을 지고 국민적 대화합을 이룩하는 데 모두 선두에 서서 다같이 노력합시다.

  그리고 마지막 다섯 번째는 이미 말한 대로 남북한 사이에 평화를 이룩하고 교류·협력을 추진하여 공존공영을 이룩하는 가운데 장차 있을 평화적 통일에 대비하는 것입니다.


  존경하는 의원 여러분!

  이러한 다섯가지 국정목표는 21세기 우리의 국운을 새롭게 개척하는데 빠짐없이 성취해야 할 과제입니다.

  그 성공을 위해선 무엇보다도 국민을 대표하는 국회의 협력이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정치가 안정되고 여야간에는 대화하고 협력하는 관계가 이룩되어야 합니다. 국민과 국가의 이익을 최우선시하는 가운데 여야가 진지한 협상속에서 건설적인 협력을 일구어 내야 합니다.

  불행하게도 지난 15대 국회는 국민에게 많은 실망을 주었습니다. 우리는 여야없이 모두 깊이 반성해야 할 것입니다. 

  저는 이번 총선에서 나타난 민의를 겸허하게 수용하고 존중한다는 것을 다시 한번 여러분에게 굳게 다짐하는 바입니다.

  이를 위하여 여야간에 대화와 협력의 관계를 유지해 나가기를 충심으로 바라마지 않습니다.

  대화와 협력이 없는 불모의 정치풍토가 계속 되는 것은 여야 누구에도 도움이 안 되며 국민에게 실망을 안겨줄 뿐이라는 것을 지난 15대 국회가 말해 주고 있습니다. 

  다시는 이러한 전철을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것을 우리 모두 굳게 맹세하고 다짐해야겠습니다. 

  저는 야당을 국정의 파트너로 존중해서 중요 국사를 대화속에 추진하도록 제가 할 수 있는 성의와 노력을 다 하겠다는 것을 오늘 이 자리에서 여러분에게 약속하는 바입니다.

  지금 모든 국민은 16대 국회야말로 활기차고 생산적인 국회가 되기를 진심으로 바라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개혁과 성취의 국회로 역사에 남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저도 여러분의 성원속에 정성을 다하여 국정을 개혁하고 발전시키는 데 헌신할 것입니다. 그리하여 역사속에서 평가받는 대통령으로 남기를 진심으로 바라고 있습니다. 


  존경하는 의장 그리고 의원 여러분!

  오늘 이 자리가 국가와 민족의 융성과 협력을 위해 여러분과 제가 각기 역사의 소임을 다할 것을 결의하는 맹세의 자리가 되도록 우리가 합시다.

  다시 한번 여러분의 당선을 축하하며 16대 국회의 위대한 성취를 축원합니다. 

  여러분 감사합니다.



댓글

  1. DJ는 역대 대통령 중 가장 저평가된 분이 아닐까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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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그렇다고도 하겠습니다. 지금 보면 공인의 자세, 공공선에 대한 뚜렷한 가치관, 여러 고찰과 배움을 통한 미래 예측과 그 대비, 정무 감각과 고상한 언어 구사까지 요즈음과 비교하면 참 한참 저평가되셨죠. 특히나 평화가 가져다 주는 다양한 가치에 대한 인식은 지금 더욱 필요한 덕목인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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