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탄핵심판 관련 여러 소식을 듣다가 이 영상을 보면서 중간에 눈물이 핑 돌아서 내 개인적으로도 좀 갈무리할 겸 전문을 옮겨본다.
김이수 전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 마무리 발언
1987년 민주화 이후 대한민국은 다양한 정치상황을 경험하였습니다. 과거 권위주의 정부에서는 가능하지 않았던 정권교체도 이뤄냈습니다. 정당들의 지위가 여당에서 야당으로, 다시 야당에서 여당으로 교체되었습니다. 여당이 된 정당은 국정을 책임졌고, 야당이 된 정당은 정부를 견제함으로 균형을 이루고자 하였습니다. 물론 교체된 정권의 여정이 순탄하지만은 않았으므로, 물리적 충돌과 극단적 대립으로 국회가 공전하는 경우도 여러 차례 있었습니다.
또한 민주화 이후 우리는 일곱 명의 대통령을 경험한 바 있습니다. 공정하고 민주적인 대통령도 있었지만, 권위적이고 독단적인 이도 있었고, 사리사욕을 꾀한 이도 있었습니다. 우리가 겪은 시대적인 상황도 다양했습니다. 국가경제가 파탄직전까지 가기도 했고, 국민의 생명과 건강이 위협받는 위험한 상황도 있었습니다. 또한 북한과의 전쟁이 촉발될 수 있는 안보상 위태로운 상황을 겪기도 하였습니다.
하지만 분명하게 말씀드릴 수 있는 것은, 민주화 이후 어느 대통령도, 아무리 어려운 상황에 있었을지라도, 자신의 약점을 돌파하기 위해 비상계엄을 선포하지는 않았습니다.
그것은 대통령이 비상계엄의 권력을 사용하는 순간, 헌정 체제는 중단되고, 민주공화국은 붕괴되는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영원히 성공하는 것이 불가능할 뿐 아니라, 성공하더라도 오히려 더 큰 문제 즉, 더 큰 권력의 탐욕으로 이어지고 역사적 죄악으로 끌려들어가는 통로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피청구인이 저지른 비상계엄선포는 어떤 대통령도 꿈꾸지 않았던 바로 그 금단의 행위, 최악의 헌정파괴행위입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피청구인은 비상계엄에 대한 유일한 통제장치인 국회의 계엄해제 요구를 무력화하기 위해 국회를 봉쇄하고 침범하였습니다. 또한, 어떠한 근거도 없는 부정선거 의혹을 주장하며 병력을 동원하여 헌법기관인 중앙선거관리위원회를 침입하였습니다.
대통령은 국민으로부터 직접 신임을 부여받은 국정의 최고책임자이며 최고의 권력기관입니다. 그렇기에 그에게는 가장 위험한 권력인 군 통수권과 계엄선포권이 부여되어 있습니다. 동시에 가장 중요한 과업인 헌법수호 책무가 부여되어 있습니다. 만일 그가 자신에게 부여된 권력을 헌법에 대한 적극적인 공격에 사용한다면, 헌정질서는 크게 훼손되거나 파괴됩니다. 이것은, 단순히 법치주의 원칙의 위반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민주주의 공동체 자체를 붕괴시키는 재앙이며, 민주공화국에 대한 자해행위입니다.
피청구인의 헌법위반 행위들은 민주주의와 법치주의 기본원칙에 대한 적극적인 헌정파괴행위였습니다. 그럼에도 피청구인의 태도는 어떻습니까? 반성과 뉘우침이 없습니다. 거짓말과 헛소리, 궤변, 그리고 헌법에 반하는 주장을 늘어놓고 있습니다. 정당한 영장집행에 저항하였고, 극렬 지지자들을 선동하여 오히려 공권력에 대항하게 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피청구인은 몇 년 전 그가 받았던 국민의 신임을 더 할 수 없는 방법으로 배신하고 있습니다.
그래도 다행스러운 것은 대다수 우리 국민들에게 민주주의와 헌법의식이 몸과 마음에 배어 있다는 것입니다. 피청구인의 위헌적인 12·3 비상계엄이 실패할 수밖에 없었던 것도 바로 시민들의 이러한 살아있는 민주의식 덕분입니다. 우리들은 이 자리를 빌려 감사드리고자 합니다, 비상계엄을 무산시켜야 한다, 계엄해제요구를 결의하는 국회를 방어해야 한다는 일념으로 한밤중에 뛰쳐나온 용감한 시민들에게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국민들에게 무력을 행사할 수 없다고 판단해서, 상관의 명령에 소극적으로 저항한 지휘관과 장병들에게도 감사드립니다. 당신들이 있었기에 우리들의 일상을 유지할 수 있었으며, 우리와 가족들의 생명과 자유를 지킬 수 있었습니다.
덕분에 우리는 알게 되었습니다. 우리들이 만들어낸 민주주의는 무모하고 무도한 대통령 한 사람이 뒤집을 수 있는 대상이 아니라는 것을. 그리고 대한민국에서 민주주의와 헌법, 그리고 자유와 기본권은 단지 법이나 제도가 아니라 국민 모두가 내면화한 가치이며 양심이 되어 있다는 것을 말입니다.
피청구인을 지지하는 세력들은 헌법을 부정하고, 민주주의와 법치주의를 조롱하고 있습니다. 법원과 헌법재판소 파괴를 선동하고 있습니다. 이 파괴를 선동하는 세력들이 인터넷과 광장을 어지럽히고 있습니다. 시끄러운 굉음으로 공동체의 신뢰와 가치를 혼란에 빠뜨리고 있습니다.
비상계엄 선포로 대한민국 공동체가 입은 상처는 깊고 위중합니다. 공고화된 민주국가 시민으로서의 자긍심에 큰 손상을 입었습니다. 추락한 경제는 정치적 불안에 위기감을 더하고 있습니다. 대통령 탄핵을 둘러싸고 정치적 양극화는 더 심화되었습니다. 또한 군 전체에 수치스러운 트라우마를 남겼습니다.
국민들은 그 상처의 치유를 원하며 민주주의와 헌정질서의 온전한 복원을 갈망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자신감과 용기를 가져야 합니다. 대한민국의 법치와 민주주의 시스템에 대한 의연한 신뢰를 가져야 합니다. 거스를 수 없는 국민들의 보편적 합의로 민주주의와 법치주의를 완성하기 위해서는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할 수도 있습니다. 우선 가장 중요한 일부터 한 걸음씩 해결해 가야 합니다. 그 첫 번째 과제는, 바로 이 사건 탄핵심판에서, 공정하고 정의로운 결정이 내려지는 것입니다. 바로 대통령에 대한 파면결정입니다.
만에 하나, 헌법재판소가 피청구인에 대한 탄핵심판청구를 기각하여 피청구인이 대통령의 직무에 복귀하게 된다면, 이는 더 큰 재앙을 불러오는 것으로, 우리 공동체와 구성원 모두를 위험에 빠뜨리는 행위가 될 것입니다. 피청구인의 무모한 헌정파괴행위로부터 헌법을 수호하기 위해 헌법과 법치주의의 준엄함을 분명하게 보여주어야 합니다. 다시는 이러한 일이 재발되지 않도록 피청구인에게 엄중한 책임을 물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피청구인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파면 결정은 신속하게 내려져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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