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 콘텐츠로 건너뛰기

45년 걸린 비정상의 정상화

1981년에 낙지 군부정권에 저항한 시민 다섯 사람이 45년만의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 받았다. 솔직히 이건 무죄라기보다는 민주화 유공자로 인정해야 하는 쪽인 거 같지만 아무튼.

출처 : https://news.ikbc.co.kr/article/view/kbc202610130040


45년 전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부터 보자. 피고인은 총 다섯 명이다.

1981년 3월과 5월 A, B 두 사람은 “대학인이여 봉기하라”, “선거인단의 대통령선거 전국구 선거제도는 현 파쇼정권의 악랄한 조작” 등의 내용이 담긴 유인물을 만들어 배포했으며, C, D 두 사람은 “현 정권은 군인과 경찰을 동원해 폭력정치를 휘두르고 있다”는 유인물을 배포했다. 또한 인천 중구에서 열린 모임에 참가한 뒤 200여명과 함께 노래를 부르며 “노동삼권 보장하라” 등의 구호를 외치고 “선거인단의 대선 전국구 선거 제도는 악랄한 조작”이라는 유인물을 뿌리며 시위에 앞장섰다고 한다. 이러한 유인물 배포와 집회 시위를 가지고 집시법 위반 혐의로 당시 법원은 A에게 징역 장기 8개월과 단기 6개월, B에게 징역 8개월에 집유 2년, C와 E에게는 징역 10개월, D에게는 징역 10개월에 집유 2년을 선고했으며 항소심을 기각하여 형을 확정해버렸다. 항소심을 기각한 것도 정말 어처구니가 없는 일이 아닐 수가 없다. 

재심 선고에서 인천지법 형사4단독 이수현 부장판사는 "피고인들의 행위는 모두 1980년 5월 18일을 전후해 발생한 헌정질서 파괴 범죄와 반인도적 범죄에 반대하거나 이를 저지하기 위한 행위"라며 "헌법 존립과 헌정질서를 수호하기 위한 정당한 행위"이며 "이는 형법 제20조의 정당행위에 해당해 범죄가 아니라고 보는 것이 상당하다", "피고인들에 대한 공소사실은 범죄의 증명이 없거나 죄가 되지 않는 경우에 해당해 무죄"를 선고하였다. 형법 제20조의 정당행위는 이런 것이다.


그렇다. 내란범을 내란범이라고 고발하는 유인물과 시위는 정당행위인 것이다. 이 사건을 검색하다가 최근에 이러한 전낙지 시절 집시법 위반 전과에 대한 재심이 여기저기서 많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재심뿐 아니라 청람회 국보법 조작사건으로 기소유예 처분을 받았던 두 사람이 2026년 6월에 대전지검 형사4부로부터 직권 변경으로 '혐의없음' 처분을 받는 일이 있었다. 이 사건으로 옥고를 치렀던 이완규 씨(내란범 아님)는 이미 2024년에 재심을 통해 무죄를 선고 받았다고 한다. 이게 말이 좋아 무죄고 말이 좋아 혐의없음 처분이지 요즘 같으면 법왜곡죄로 처벌 받을 일이다.

출처 : https://www.yna.co.kr/view/AKR20260609136200063

지난 2026년 4월에는 부산고법 형사항소 4-1부 정성호 부장판사는 지금은 작고한 박모 씨(당시 50대)의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에 대하여 원심을 파기하고 재심 무죄를 선고하는 일이 있었다. 

출처 : https://omn.kr/2homj

1981년 2월 부산에 거주하던 박모 씨는 안기부에 영장도 없이 체포 당하고 대공분실에서 상당 기간 불법감금 상태로 잠을 재우지 않는 고문 등으로 박모 씨에게 자필 진술서를 받아냈다. 찬양고무라며 기소된 지 두 달만에 징역 3년에 자격정지 3년 형을 받았고 항소심에서는 반공법·보안법 위반이라며 징역 1년, 자격정지 1년 형으로 약간 감형했다. 당시 박모 씨는 고문에 의한 자백을 계속 주장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아 상고를 포기한 뒤 박모 씨의 가족은 연좌제 때문에 친척들과도 연락할 수 없고 계속 고통을 받았다고 한다.

안타깝게도 박모 씨는 이미 1992년에 별세했으나 그 손녀인 ㄴ 씨가 진화위에 이 사건을 들고 찾아갔고 2024년에 재심 권고를 받았다. 그리고 여전히 연좌제의 고통 때문에 쉬쉬하고 싶어하는 가족들을 설득해 재심에 이르게 된 것이라고 한다. 정부로부터 적절한 형사보상금도 받으셨기를.


이외에도 이재오나부랭이가 남민전 사건의 재심 무죄를 받기도 하는 등 여러 사건이 많지만 2026년 3월에 처음 본 사건과 아주 유사한 재심이 있어서 눈길을 끌었다.

출처 : https://www.news1.kr/society/court-prosecution/6112772


남모 씨 등 3명의 집시법 위반 사건 재심에서 무죄가 선고되었는데 사건은 이러하다.  1981년 10월 서울 마포구 소재 한 대학에서 메가폰을 들고 "전두환은 물러가라" 등 구호를 외치고, 전두환 정권을 반민주독재집단이라고 비판하는 내용의 유인물을 제작·배포하였다고 한다. 이 집시법 위반 혐의로 두 달여만인 같은 해 12월에 징역 2년을 선고했고 항소가 기각되며 그대로 형이 확정되었다. 처음 본 사건과 거의 유사한 내용과 전개다. 그 시절에 형사사법기관과 재판절차가 얼마나 군사독재정권에 부역했는지, 심지어 부역의 내용이 공장제처럼 유사한 것까지도 기가 막힌다.

이 사건이 인상적이었던 건 아주 유사하다는 점도 있지만 기사에 재판부 판시사항을 조금 더 상세히 적어둬서였다. 아마 처음 본 사건도 이 판결문과 크게 다르지 않은 구조로 작성되었을 것으로 추측해볼 수 있겠다.

위 기사 중 판시사항 부분만 살짝 인용해보겠다.


재심 재판부는 전두환 전 대통령의 내란 사건 대법원 판례를 인용해 "전두환 등은 1979년 12·12 군사 반란을 일으킨 이후 1980년 5월 17일 비상계엄 확대 선포를 시작으로 1981년 1월 24일 비상계엄 해제에 이르기까지 일련의 헌정질서 파괴 범죄행위를 저질렀다"

"피고인들의 행위는 1980년 5월 18일을 전후해 발생한 헌정질서 파괴 범행을 저지하거나 반대한 행위"라며 "헌법의 존립과 헌정질서를 수호하기 위한 정당한 행위라고 봄이 타당하고, 정당행위에 해당해 범죄가 되지 않는다"고 선고 취지를 설명했다.

출처 : https://www.news1.kr/society/court-prosecution/6112772



아무리 전낙지의 내란과 학살에 대하여 사실을 왜곡하려 들어도 그 내란은 엄연히 내란으로 판결문에 영영 남았고 그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그리고 아무리 미친 것들이 헛소리를 해도 거기에 맞선 많은 용기 있는 시민의 저항이 옳았다는 것 역시 역사적 평가이고 법의 심판 결과라는 점은 공적으로 계속 누적이 되고 있다. 민주화 운동 전과에 대한 재심 무죄가 더 많아져서 이런 기록이 더더더더 빼도 박도 못 하게 남기를.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