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상 타이밍은 정치에서 거의 모든 것을 좌우한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정무감각은 정책역량과 달라서 컨텐츠의 질이 조금 모자라도 사람이 지닌 매력의 정도가 넘사벽이거나 타이밍이 기가 막히면 결과가 예상 외로 잘 나오기도 하고 반대로 컨텐츠를 기깔난 걸 준비해와도 운이 진짜 지지리도 없거나 타이밍에 대한 이해가 없는 사람이면 그냥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리기도 한다.
컨텐츠가 완전히 기깔나는 건 아니라도 인간적 매력으로 발라버리는 경우? 노무현이다.
| 출처 : 대통령기록관 |
한국 현대사에서 매력적인 정치인이라고 할 때 DJ와 노무현을 빼고 말할 수가 있을까. 독재정권 치하에서 야당의 지도자였던 DJ의 리즈시절에 버금가는 것이 노무현의 대선 경선 시절일 것이다. 정책 면에서 볼 때 개혁적인 면이 물론 없지 않았으나 그 자체로 완전히 신선한, 또는 진짜 국정이슈들에 대한 기가 막힌 정책해법 같은 정책 컨텐츠가 있었다고 하긴 어려울 것이다. 그도 거대 리버럴 정당의 대선후보였으니까. 그런데 노무현의 화법, 가식을 모르는 듯한 태도, '바보'라는 말로 대표되는, 미련해 보일 정도의 뚝심 이런 것이 아우라를 만들어내서 '왠지 모르게 노무현이 하는 말을 믿고 싶어' 하게 만드는 그런 게 있었다. 그런 건 연습한다고 생기는 게 아니기 때문에 구 민정당계, 현 내란 순장조 계열 인간들은 거기에 대한 열등감도 굉장히 심했다고 생각한다.
타이밍이 기가 막혔던 경우는 여러 가지 있을 수 있겠지만 나는 YS의 하나회 해체과 금융실명제 도입이 기억하는 한도 내에서 가장 드라마틱했다고 생각한다.
| 출처 : 대통령기록관 |
취임이 1993년 2월 25일이었다. 그리고 1993년 3월 8일에 YS는 국방장관을 청와대로 불러서 "오늘 육참총장과 기무사령관을 바꾸려고 합니다."라고 했다고 한다. 두 보직은 하나회에서 지들끼리 번갈아가며 맡는 자리였고 이 두 보직을 비 하나회 인사로 교체했다. 회고록에 따르면 YS는 "군 개혁이야말로 전광석화처럼 전격적으로 단행하지 않으면 성공하기 힘들다고 판단"했다고 하니 과연 취임 초의 번개 같은 속도의 조치였고 4월 2일에 특전사, 수방사, 4월 8일에는 군사령관, 4월 15일에는 군단장, 사단장급의 하나회를 싹 다 날렸다. 취임 초 가장 권력의 집중도가 높고 언론과 관계가 좋은 허니문 기간이라는 타이밍을 놓치면 안 된다는 판단. 이 경우는 내용도 내용인데 타이밍이 정말 최고였다고 생각한다.
금융실명제의 경우는 YS의 대선공약이었다. 그런데 이것도 좀 취임 첫해에 정신 차릴 틈을 주지 않고 휘몰아친 경우에 속한다. 1993년 8월 12일 저녁에 갑자기 대통령이 긴급 담화문을 발표했는데 무려 그게 계엄령 나부랭이가 아니라 '금융실명거래 및 비밀보장에 관한 긴급재정경제명령'이었다. 이는 민주화 이후 최초의 긴급명령이었다고 한다. 이걸 좀 이해하기 쉽게 설명하자면 경제분야의 계엄령 같은 거다. 명령을 내린 이후 국회 승인이 필요하다. 대선공약+당시 민정당 이름인 민자당의 대통령 YS였으므로 국회 승인도 어렵지 않았다.
반면, 컨텐츠가 괜찮아도 천재지변 급의 사건이 일어나 망하기도 한다.
북한이 손학규를 어지간히도 싫어하나보다, 라고도 생각할 법한 공교로움이랄까. 뭐라고 길게 쓰고 싶지도 않다. 지인이 민심 대장정을 함께한 그 캠프 구성원이었는데 대장정 마치고 서울역에서 해산하면서 기자회견하고 대권행보를 딱 하려던 날이었는데 북한이 핵실험을 하는 바람에 뉴스에서 완전 묻혀 버려서 엄청 좌절한 모습을 실시간으로 봤었다.
이 모든 이야기를 꺼낸 것은 타이밍을 재앙급으로 지지리도 모르는 어느 정치인 때문이다.
광복절특사 전에 이런 말을 했었다.
이유는 단순했다. 정치인은 감옥살이 자체가 흠이 되진 않는다. 본인의 신체는 좀 고되더라도 말이다. 더군다나 옥중에서 책을 쓰고 편지를 쓰고 운동을 하고 뭐 이런 이미지를 쭉 가져왔는데 어차피 만기출소도 그리 많이 남지 않은 상황에서 넙죽 사면을 받는다? 다른 건 다 둘째 치고 너무 멋이 없다.(위의 노무현 사례만 봐도 그렇지 않은가) 본인 정치생명에도 '조금은 더 탄압 받는 야당 정치인 늭낌적 늭낌'을 고수하는 것이 훨씬 도움이 되고 본인과 당의 몸값을 더 끌어올릴 수 있게 된다. 하지만 나오는 게 우선이었던 모양이다. 욕은 욕대로 먹고 대통령 지지율 깎아먹는다는 이유로 일부 민주당 지지자들 사이에서도 불만이 터져나왔으며 정말 무엇보다 너무 멋대가리가 없다. 게다가 가족들이 그렇게 언론에 시달려놓고도 대뜸 페이스북에 냉큼 된장찌개 이미지까지 첨부해서 올리다니 타이밍을 몰라도 이렇게 모르나? 물론 의도는 안다. '내가 이렇게 일상을 회복하게 됐다'는 티를 내고 싶었겠지. 하지만 그렇게 빨리? 그리고 드러내는 방식도 무슨 역전 해장국집 순댓국밥도 아니고 다소 애매한, 그렇다고 근사하지도 않은 식당의 된장찌개 전골냄비 사진이라니. 당연히 오보였을지언정 일등신문 등이 물어뜯는 것은 당연하고 그걸 구질구질하게 해명을 해야 하지 않느냐 말이다. 사면을 가지고 진영을 가리지 않고 갑론을박이 있던 상태였다. 근데 출소하자마자 그걸 꼭 올렸어야 하냐 이 말이다. 본인은 물론, 가족, 당에도 모두 마이너스다.
그러더니 기어이.
| 출처 : https://www.women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267249 |
이 타이밍에 '비대위원장'이라는 타이틀로 사실상 대표 복귀? 더군다나 해당사건의 성폭력범죄 피해자가 반대했는데도? 지금 그 당은 초심으로 돌아가느냐가 문제가 아니고 당이 다음 선거 전에 사라질 수도 있단 말입니다? 그럴 정도의 위기라는 인식이 없다는 뜻이 아닌가? 이 타이밍에 등판하면 결국 본인 정치도 제대로 못 하고 당도 더 위기에 빠지다가 지선에서 큰 소득을 없지 못 하는 경우 몸값이 떨어져 도매금에 민주당으로 흡수되는 수순으로 갈 위험도 많다.
조국혁신당은 또한 11월 조기 전당대회를 앞두고 있다. 지금 9월, 두 달 남짓이다. 조국 씨는 비대위원장 하다가 또 대표로 출마해야 하지 않은가? 그럼 두 달도 채 되지 않을 것이다. 왜 이런 짓을 하냐는 거다. 이 시점에.
타이밍을 모르면 정무감각이 없다고 봐야 한다. 그리고 안 미안하지만 그건 진짜 스불재다. 이 정도의 감각 없음? Hㅏ. 정치 안 하는 게 낫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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