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통계로 한국의 인구는 약 5155만 8천여 명이라고 한다. 그런데 국회의원은 300명이다. 이건 많은 걸까, 적은 걸까?
아래 차트는 OECD에서 조회하면 나오는 각국 2023년 인구이다.
한국은 인구규모로 10위쯤 된다. 그리고 아래는 오마이뉴스에서 정리한 2023년 기준 OECD회원국 국회의원 1인당 인구수이다.OECD 평균은 의원 1인당 인구수는 약 8만2천 명인데 한국과 인구규모가 비슷한 국가들을 위주로 좀 보겠다. 한국보다 인구수와 의원 1인당 인구수가 많으면 빨강, 반대는 파랑으로 표시했다.
1) 콜롬비아: 인구수 약 5221만, 의원 1인당 인구수 약 17만6천
2) 이탈리아: 인구수 약 5903만, 의원 1인당 인구수 약 9만7천
3) 스페인: 인구수 약 4764만, 의원 1인당 인구수 약 7만7천
4) 캐나다: 인구수 약 3942만, 의원 1인당 인구수 약 8만9천
5) 영국: 인구수 약 6784만, 의원 1인당 인구수 약 4만7천
6) 프랑스: 인구수 약 6834만, 의원 1인당 인구수 약 7만3천
7) 폴란드: 인구수 약 3852만, 의원 1인당 인구수 약 6만8천
미국은 좀 여러 모로 예외라고 하겠다. 인구규모도 다르거니와 미국인은 생활에서 90% 이상 주(state)법의 영향 하에 산다. 연방법과 결부되는 사항은 10% 이내다. 주의회로 따지면 이야기가 아주 달라진다 가령 내가 다니는 회사의 본사가 있는 로드아일랜드 주는 미국에서 작은 주에 속하는데 2023년 기준 인구가 109.6만인데 정원이 각각 상원 38명, 하원 75명이다. 인구 110만이 채 안 되는데 의석수는 양원 합쳐 총 113명, 1인 당 인구수를 나누면 채 1만 명이 안 되고 하원만 따져도 1만5천 명이 안 된다. 반대로 큰 주인 플로리다 주를 보면 인구 약 2261만에 상원 40명, 하원 120명이다. 1인당 인구수로 따지면 14만 1313명이니 이것도 한국보단 나은 수치다.
이런 반박이 있다. '미국처럼 우리도 지방자치제가 성숙하지 않았느냐? 국회의원 늘리지 않아도 된다!' 이런 주장. 그러나 지자체 자치사무/위임사무 비율과 국세/지방세 비율을 보면서 따져야 한다. 거의 압도적인 세수가 국가재정으로 들어가고 지방재정의 세수는 지극이 적고 지자체만의 사무인 자치사무 대비 국가로부터 위임 받은 위임 사무의 비율도 아주 높다. 결국 현재의 지자체는 중앙정부의 말단조직처럼 기능하고 있고 지자체장이 그 중 일부 권한을 부여 받은 형태에 가깝다.
사실 국가마다 정치체계, 선거제도, 정치환경이 전부 다르므로 정확히 의원 1명 당 몇 명이 적정한지까지는 딱 잘라 말하기 어렵다. 그렇다 하더라도 17만이 넘는 현재가 과도한 것만은 분명하다.
당장 OECD 평균(이 기준으로 계산하면 약 620명대)에 맞추는 것이야 당연히 가능하지 않더라도 2024년 기준 5171만이라는 인구수 기준으로 볼 때 의원 1인당 인구수 15만 명 언저리라도 맞춘다든지(약 345명), 획기적으로 10만 명이라도 맞춰서 520명 선으로 획기적으로 늘릴 궁리를 해야 한다. 현재와 같이 너무 많은 수를 한 명이 대표하게 되면 당연히 그 한 사람에 따라 어떤 시민의 요구는 과대대표되고 어떤 시민의 요구는 사라져버리게 된다. 아울러 모든 시민의 공무담임권을 조금씩 다 갉아먹고 있는 상태이기도 하다.
국회의원을 늘리면 안 되는 이유로 돈을 너무 많이 타간다거나 부정부패를 더 많이 저지를 것이라는 이야기를 많이 하는데 오히려 이는 입법권이라는 큰 권력을 더 소수가 갖기 때문에 생기는 부작용이다. (실제로 한국의 입법부 권력이 큰가, 하는 문제는 다음에 또 알아보기로 하고) 오히려 이 큰 권력을 더 많은 사람이 잘게 쪼개어 가질 때 권력의 집중에서 비롯되는 부작용을 더 줄일 수 있다. 국회의원의 보수 문제도 국회의원을 더 늘리고 보좌진과 국회의 각종 입법보좌기구(국회입법조사처와 국회예산정책처, 법제실, 국회도서관 등)의 규모를 키워 지원하는 대신 국회의원 개인의 보수는 최저임금과 연동시켜 상승을 억제할 수 있는 부분이다. 그리고 이 사람들한테 돈을 적당히라도 주지 않으면 다른 사람들의 돈을 받고 싶어하게 될 위험이 크고 그럼 그 돈을 주는 사람들 말을 듣게 된다. 여기에 더해 직업 정치인이 탄생하지 못 하게 되면 정말 정치인이 아니어도 먹고 살 걱정이 없는 사람들만 남아 정치를 하게 된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아주 중요한 부분이 있다. 2025년 대한민국 행정부의 총 예산은 약 677조 4천억 원이다. 이걸 300명이서 심사한다. 산술적으로만 따지더라도 1명이 2조 2580억 원 규모 정도를 심사하게 된다. 근데 실제로는 이런 식으로 심사되지도 않는다. 국회가 예산안에서 심의를 통해 증감한 금액은 4조 3804억 원대로 총 예산액의 0.64% 정도 된다. 국회가 건드는 건 정말 새발의 피만큼도 안 된다는 소리다. 행정부가 돈을 써야 할 곳에 돈을 쓰게 하려면 국회의원을 늘려서 누군가는 이걸 더 열심히 간섭할 수 있게 해야 한다.
국회의원이 일도 안 하고 돈 받아가지 않느냐는 질문이야말로 정치혐오를 불러 일으켜서 정치무관심을 조장하고 거기에서 반사이익을 얻으려는 극우 파시스트 세력의 술수라고 생각한다. 권력을 더 많은 사람이 나눌수록 나눠가진 한 사람 한 사람 몫의 권력의 크기가 작아지는 것을 생각해야 한다. 그리고 이번 내란 정국에서 보듯이 국회의원이 하는 일이 결코 없지 않다. 아주 중요한 일을 한다. 이 사람들(과 그 보좌진)이 더 일을 잘 할 수 있게 만들어야 한다.
그래서 끝으로 이 말을 꼭 기억해주면 좋겠다.
누군가 국회의원 숫자를 줄이자고 한다면 그건 "국회의원이 갖는 권력을 더 소수만 나눠 갖겠다."라는 뜻이라는 걸.
"누군가 국회의원 숫자를 줄이자고 한다면 그건 "국회의원이 갖는 권력을 더 소수만 나눠 갖겠다."라는 뜻이라는 걸."
답글삭제기억해두겠습니다. 🙂↕️
누가 왜 늘려야 하는지 물어볼 때 길게 설명하기 어렵다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명료한 한줄이 있었네요.
사실 공무담임권도 시민의 중요한 권리 중 하나인데 이게 상대적으로 더 크게 침해되는 상황이기도 하고요. 하물며 늘리기는커녕 줄이자고 하는 건 정말로 음험한 발상입니다. 권력은 더 여럿이 나눌수록 작아진다는 것을!
삭제얼마 전의 '어떤 원한'같은 휴먼모멘트가 강한 글도 좋았지만, 이 글은 정말 유익하네요. 더 많은 사람들에게 읽혔으면 좋겠습니다.
답글삭제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의원정수는 참 인식을 바꾸기 쉽지 않은 문제여서 고민이 많은 부분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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