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일할 때 본회의 수행을 할 때가 있었다. 영감을 본회의장 들여보내고 본회의가 짧을 예정이거나 본회의에 이어서 일정이 바로 있거나 또는 본회의 중간에 나가야 하는 일정이 있을 때는 그 앞에서 시간 죽이면서 다른 보좌진들하고 커피 한 잔 때리며 수다 떨거나 아니면 본회의가 길어질 각이면 방으로 돌아가서 해야 할 일을 처리하기도 한다.
그 날은 본회의 끝나고 영감 혼자 방에 와도 되는 날이어서 먼저 방에 돌아와서 이것저것 일처리를 하고 있었다. 영감이 언제 올지 눈치를 채야 하므로 당연히 의원실 TV로 본회의를 틀어놓고 있는데 갑자기 본회의장에 어울리지 않는 와글와글 시끌벅적한 웃음소기가 들리는 거다. 오잉? 하고 TV를 보러 가니 당시 의사 진행을 이병 부의장이 하고 있었고 얼굴이 벌개져 웃는 상황이었다. 뭐지? 하고 잠시 지켜보는데 앉아있는 의원들도 다 웃고 난리가 나있는 상태였다. 좀 진정하고 다시 의사를 진행하는데 '아, 이거였구나.' 나도 빵터지고 말았다.
당시 영상을 보자.
저 웃음이 한번 터져버리니까 제어가 안 되는 상태였다. 뉴스는 편집을 해서 이게 살지가 않는데 당시가 궁금한 분들은 링크를 드리니까 해당 본회의(제313회 국회 제5차) 영상의 1:21:16부터 보시면 된다.
당시 상정되던 법안의 순서가 이랬다.
24. 쌀소득 등의 보전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수정, 김재원의원 대표발의)
25. 농어촌구조개선특별회계법 일부개정법률안(원안, 김재윤의원 대표발의)
26. 소나무재선충병 방제특별법 일부개정법률안(원안, 정부제출)
27. 공중방역수의사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원안, 정부제출)
28. 초지법 일부개정법률안(수정, 정부제출)
29. 전통 소싸움경기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원안, 정부제출)
[살]소득에서 시작된 웃음이 소나무재[슨]충병에서 커지고 결정적으로 전통 소[사]움경기에서 빵터져버린 것. 다시 생각해도 진짜 좀처럼 웃음이 잘 나오지 않는 장소여서 그런지 더 웃긴 사건이었다. 생각해보면 이병석 부의장은 늘 사투리를 많이 썼을 건데도 그날따라 [상]시옷이 연달아 나와가지고 정말 웃겼다. 죽을 때까지 그 발음을 구분할 수 없다는 애교 섞인 발언까지 뭔가 완벽한 꽁트의 마무리.
두 번째 기억은 강기정 현 광주광역시장과 '임을 위한 행진곡'에 얽힌 기억이다.
2013년 5월 7일 본회의(제315회 국회 제6차)에서 5분 자유발언을 신청하였다. 당시 강기정 시장은 망월동이 있는 광주 북구의 국회의원이었고 716에 이어 503도 5.18기념식장에서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지 못 하게 한 일로 시끄러웠던 때였고 강기정 의원이 본회의장에서 이 노래가 어떻게 불리게 되었는지 그 연원을 설명하고는 '제가 한번 불러보겠습니다.'하고 냅다 부르기 시작했다. 솔직히 노래는 썩 못 하는데 권력이 부르지 못 하게 하는 노래를 국회 본회의에서 부르고 이 노래는 그냥 노래가 아니라 역사고 혼이다, 라는 주장이 국회 회의록에 공적 기록으로 영영 남게 됐다. 이로써 무도한 716, 503의 시대가 기록으로 남는 거다.
하지만 사실 강기정 시장 하면 당시에 본회의장에서 노래 부른 의원보다 더 검색에 잘 걸리는 키워드가 '국회 폭력사태'였다.
때는 2010년 12월 새해 예산안 심사 중이었다. 심사가 한창이었는데, 정말 한창이었는데 현 내란 순장조, 당시 한나라당이 예산안을 갑자기 날치기 시도했다. 이때 날치기 상황을 일일이 설명하면 상당히 복잡한데 요약하면 당시 이주영 예결위원장(맞다. 팽목항 수염맨 그 사람.)이 계수조정소위 심사를 단축시키고 한나라당 단독으로 예결위에서 예산안을 통과시켰고 당시 박희태 의장은 예산안과 국토위에서 제대로 심사도 안 한 친수구역법 등을 직권상정해서 한나라당 단독으로 본회의 날치기 해버린 해였다.
이 날치기를 저지하기 위해 야당의원, 보좌진과 당직자들이 본회의장 점거를 하면서 몸싸움이 일어났다. 이때 보도사진을 보면 참혹하다. 김성회 씨가 강기정 당시 의원을 때려서 피도 많이 났는데 일등신문 등에서는 정말 열심히 국회폭력사태라고 하면서 강기정 의원만 많이도 깠다. (당시 보도사진에 야당 당직자, 속기사들이 머리채 잡힌 사진도 많이 나온다.) 결국 이 때 일로 폭행죄 벌금형을 받는 등 이미지에 상당한 타격을 입었고 이 때문인지 제20대 총선을 앞두고는 공천도 탈락했다. 일찌감치 공천탈락을 수용한 강기정 의원이 제19대 국회의 시즌 피날레, 테러방지법 필리버스터(2016년 2월 23일 제340회 임시회 제7차 본회의)로 본회의장에 다시 섰을 때, 난 속으로만 '임을 위한 행진곡 앙콜!'을 외쳤는데...
그런데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습니다?
본인도 그 일이 뜻깊었는지, 필리버스터를 마감하면서 2013년 5분 자유발언을 스스로 언급하며 '임을 위한 행진곡'을 정말로 다시 불렀다. (약간 직후에 정갑윤 부의장 발언까지 뭔가 특수한 상황에서 오는 낭만이 좀 있다. 국회 영상회의록 링크는 여기. 전체보기[10]의 강기정 의원 토론 마지막 5분 정도이다. 이 날 강기정 의원은 필리버스터를 5시간 정도 했다.)
이때가 새벽이었는데 지켜보던 수많은 사람 중 하나였던 나는 국회 일할 적에 듣던 걸 나와서 다시 들으니 느낌이 좀 싱숭생숭 했던 때였는데 강기정 당시 의원은 곧 나갈 참에 필리버스터도 하고 임을 위한 행진곡도 다시 불렀으니 더 마음에 지진이 났겠지. 뭐 그 뒤론 청와대 정무수석도 하시고 뭐, 지금은 광주광역시장 되셨으니까. 오랜만에 영상 다시 보니 저땐 젊다, 참.
영감 전광판 자료 띄우는 것 때문에 본회의장 출입했을 때보다도 이때의 기억들이 더 생생한 건 왜일까?
어쨌든 오랜만에 추억 돋는 옛날 국회 이야기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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