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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에서 져볼 필요도 있다

박주민 의원 이야기다.

욕심은 알겠지만 서울시장보다는 국회의원 박주민이 더 좋다고 여러 번 말해봤지만 그건 그냥 지나가던 서울시민372054의 이야기고 박주민 의원은 서울시장이 참 되고 싶었나보다. 하지만 이러저러하여 당내경선에서 졌고 최근에 약간 내가 알던 박주민 의원 같은 모습으로 돌아왔다.

사람들의 선택을 받는 것에 계속 성공하다가 유난히도 갈망하던 선거에서 본선까지 가기도 전에 져버렸으니 속은 좀 쓰렸을 것. 그리고 엄밀히 내가 볼 땐 아직도 서울시장을 향한 열망을 완전히 놓은 것 같진 않다. 다만 그렇다 하더라도 아주 최소한, 기회가 다시 오게 됐을 때 같은 실패를 두 번 하지 않겠다는 결의로써 박주민 의원이 좀 달라졌다. 나은 방향으로.

그렇게 생각한 계기는 이 트윗 때문이었다.


SNS 담당자로 ㅍㅋㄴ을 넣은 거 같은 메시지만 내서 염증이 났던 게 저번 경선 국면이었는데 달라졌다. 표현과 톤도 깔끔하지만 우선 무엇보다 '민변 출신, 세월호 변호사 출신' 박주민에게 어울리는 내용이라는 점이 눈에 들어왔다.

캡처해서 블루스카이로 데려오니 블좍들의 반응도 '난가병'이 나은 것 같다는 쪽으로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이대로 '우리 마이콜 형이 달라졌어요'를 해피엔딩으로 마칠 수는 없는 일. 정말일까? 알아보려면 내 방식으로는 딱 한 가지. 법안을 살펴보는 수뿐이다. 그리고.

출처 : https://likms.assembly.go.kr/bill/bi/billDetailPage.do?billId=PRC_A2B6Z0Y9Y0U2U1T6T4S1S5Q3R7Z3X7
따단. 

아주 따끈따끈한 새 법안이다. 2026년 9월 3일 접수.

민법 개정안. 여타의 법률 이름부터 이것이 무엇을 위한 법인지를 딱 눈치챌 수 있는 온갖 법들과 달리 민법은 기본법이고 워낙 넓은 범위가 총망라 되어 있어서 내용을 보기 전까진 뭐를 어떻게 개정하는 건지 알기 쉽지 않다. 그러니까 바로 제안이유 및 주요내용으로 넘어가도록 하겠다.


  현행 「민법」 제781조제1항은 자녀가 부(父)의 성과 본을 따르는 것을 원칙으로 하되, 부모가 혼인신고 시 협의한 경우에는 예외적으로 모(母)의 성과 본을 따를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음.

  그러나 혼인신고에서 자녀 출산에 이르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적 간격이 존재하고, 혼인신고 시점에서는 자녀의 출산 여부와 시기가 확정되지 않은 상태에서 태어나지도 않은 자녀의 성과 본을 미리 결정하도록 하고 있어 현실에 부합하지 아니한 측면이 있음. 

  이에 자녀의 성·본에 관한 부모의 협의 시점을 현행 “혼인신고 시”에서 “혼인신고 또는 자의 출생신고 시”로 확대하여, 부모가 혼인신고 시점뿐만 아니라 자녀의 출생이라는 실질적 계기에 이르러서도 충분한 논의를 거쳐 성·본을 결정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부모의 실질적 선택권을 보장하고 헌법이 규정한 혼인과 가족생활에서의 성평등 이념을 보다 충실히 구현하려는 것임(안 제781조제1항).


그렇다. 현행 혼인신고서에 보면 태어날 자녀의 성을 누구의 성으로 할 것이냐고 붇는 란이 있다. 

가족관계등록사무의 문서 양식에 관한 예규 중 [양식 제10호] 혼인신고서 중 일부

혼인신고 때부터 자녀가 태어나기까지의 기간은 집집마다 천차만별일 텐데, 그리고 혼인신고할 당시에는 자녀 계획이 없었다가도 나중에 생기는 경우도 있을 수 있는데, 더불어 결혼할 당시엔 이 문제 자체에 별 생각이 없었다가 부부 모두가 페미니스트가 되어 생각이 달라질 수도 있는데 현행법 상 이걸 깔끔하게 정할 수 있는 온리원 기회가 혼인신고 때뿐이라니. 물론 나중에 가정법원에 자녀의 성본 변경 심판청구를 해서 인용을 받아서 바꿀 수도 있긴 하지만 그건 돈과 시간과 여타의 노력이 드는 일이다.

그러니까 아이가 태어나면 출생신고를 할 테니 그때도 선택할 수 있게 하자는 것이 바로 이 개정안의 내용이다. 별것 아닌 것 같아도 별것 아닌 게 아니다. 제안이유 마지막 부분에 명시했듯 가족생활에서의 성평등 이념을 더욱 충실히 구현할 수 있는 내용이다. 


마이콜 형 돌아왔능가? 싶기도 하고 아직 좀더 지켜보기는 해야겠지만 일단은 아주 깔끔하고도 좋은 법안이다. 원래의 박주민이라는 정치인에게 기대하는 면모이기도 하고. 정치인이 승승장구하다가 한 번 미끄러지면 그대로 흑화해버리는 경우가 많다. 젊고 개혁을 외치는 폼나는 정치인이었어도 국회 밖은 춥고 권력의 자장 바깥으로 밀려나면 금세 서러움이 터져서 권력 쪽으로 어떻게든 빌붙어 다시 그럴듯한 정치인의 모습이 되기를 바라면서 내면 깊이에서 망가지기는 너무나도 쉽기 때문이다. 그래도 다행히 박주민 의원은 그렇게 절체절명의 미끄러짐은 아니고 의원직은 유지하면서 살짝 삐끗을 맛봤다. 속은 쓰렸겠으나 지금 같은 페이스로 다시 달리기 시작한다면 결과는 달라질 수 있다.

적어도 최소한 서울시장 재선거에 뜻이 있어서라고 해도 지난 번 같은 미련한 전략을 쓰지 않는 새로운 모습을 보여줄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이 조금 보인달까. 그렇다면 이번엔 더 응원할 수 있을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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