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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봉의 실험은 성공한 거 아닐까?

글쎄 읍내에서 검색을 해보니 내가 삼봉 빠수니 짓을 무려 2011년에도 하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학부 때 유가정치사상을 전공하신 교수님이 항상 하신 말씀은 이거였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신생 독립국가 중 민주공화국이 잘 돌아가는 사례는 매우 드물고 그중에 하나가 한국이며 한국시민의 민주주의 이해도가 상대적으로 높은 것은 다 삼봉 덕분이다.



저런 말씀을 하셨던 건 2000년대 초중반의 노무현 대통령 당선, 탄핵, 제17대 총선 정당명부식 비례대표제 실시 및 열린우리당 과반, 민주노동당 원내 진출 등의 맥락 위에서였지만 대한민국 현대사 면면에서 한반도 정주민이 드러낸 민주주의에 대한 이해는 조금 신묘한 것이 사실이다. 

그 첫 번째 시점은 1919년 삼일운동 때다. 


吾等은 玆에 我 朝鮮의 獨立國임과 朝鮮人의 自主民임을 宣言하노라. 此로써 世界 萬邦에 告하야 人類 平等의 大義를 克明하며 此로써 子孫 萬代에 誥하야 民族 自存의 正權을 永有케 하노라.

    우리는 지금 조선이 독립국이고 조선사람이 자주민임을 선언한다. 이를 통해 세계 만방에 알려 인류 평등이라는 대의를 분명하게 밝히고 또한, 이를 통해 자손 만대에 널리 알려 민족 자존이라는 정당한 권력을 영원히 갖도록 하려 한다.

半萬年 歷史의 權威를 仗하야 此를 宣言함이며 二千萬 民衆의 誠忠을 合하야 此를 佈明함이며 民族의 恒久如一한 自由 發展을 爲하야 此를 主張함이며 人類的 良心의 發露에 基因한 世界 改造의 大機運에 順應 幷進하기 爲하야 此를 提起함이니 是ㅣ天의 明命이며 時代의 大勢ㅣ며 全人類 共存 同生權의 正當한 發動이라 天下 何物이던지 此를 沮止 抑制치 못 할지니라.

    반만 년 역사의 권위에 기대어 이를 선언하며 이천만 민중의 충성을 합하여 표명하며 민족의 오래도록 변함없는 자유발전을 위하여 이를 주장하며 인류적 양심의 발로하면서 일어난 세계 개조의 큰 움직임에 맞추어 나아가기 위하여 이를 제기하는 것이니 이는 하늘의 명령이며 시대의 대세이며 전 인류가 공존하여 함께 살아가자는 권의 정당한 발동이므로 천하의 누구든지 이를 막거나 누르지 못 할 것이다.

- 기미독립선언서 전문 중


조선이, 대한제국이 외교권을 박탈 당한 을사조약이 1905, 병탄된 게 1910년이다. 1919년이면 그때 기준으로 그렇게 엄청 오랜 시간이 지난 시점도 아니다. 병탄 후 10년도 채 안 된 시점이다. 근데 이미 그 때의 민족대표라는 사람들은 대한제국이나 조선의 백성이 아니라 독립국의 자주민인 조선사람이 민족자존의 권리를 가지고 있다고 선언하고 있다. 이 사람들이 지식인이라서 그런 거라고? 하지만 수많은 사람이 이 선언서 또는 이와 비슷한 선언을 계속 발표하고 독립만세를 방방곡곡에서 외쳤다. 여성과 청소년도 많았다. (오죽하면 당시 일제는 여성들이 주도적으로 자꾸 독립운동을 하니까 언론을 압박해서 '남자들이 시켜서 그랬다', '남자인 교사나 지도자가 조직했다'는 쪽으로 날조도 많이 했다고 한다.) 

굉장히 많은 사람이 지금처럼 교통과 통신이 좋지도 않던 시절에 전국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민족이라는 근대적 공동체 개념을 흡수해서는 자기 손으로 내가 사는 나라의 앞날을 결정할 권리를 되찾겠다면서 투쟁을 하기로 마음 먹기까지 10년이 채 안 걸렸다는 것이다. 당연히 총 맞고 칼 맞아 죽거나 최소한 큰 고초를 당할 위험을 무릅쓰는 투쟁을 한다는 건 어쨌거나 그 정도의 결심이 설 만큼의 내적 확신이 있었다는 것 아닌가. 

대한민국 정부의 법통이 대한민국 임시정부로부터 나오는데 이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삼일운동의 결과로 생겨났다는 것만 봐도 삼일운동은 굉장한 시민혁명이었고 성리학의 나라에서 500년 넘게 산 사람들이 한 10년만에 근대적 민족국가 개념을 흡수하고 민주주의를 받아들였다는 것도 정말 이 오늘날의 too much dynamic Korea가 과연 그때도 다르지 않았구나 싶어진다.

그뿐인가. 미군정이 들어와 미국이 해방시킨(이라고 쓰고 점령한이라고 읽는다.) 다른 모든 나라처럼 신탁통치를 실시할 거라고 하니 가진 거라곤 망명해 있던 임시정부에서 귀국한 인사들뿐이던 나라 사람들이 완전 들불처럼 일어나 반탁(신탁통치 반대)을 외친 것도 꽤 어이 없다.(물론 이러고 금세 정파 유불리에 따라 견해를 나눠 박터지게 싸웠지만) 실제 전국 단위로 민주정을 경험한 적도 없으면서 대체 어디서 나오는 자신감이란 말인가.

근데 이게 정말 사람들이 국가번호 82의 나라가 될 사람들이어서만 가능했을까? 이 질문에 대해서 이제 나는 이게 삼봉의 정치 실험 성공이라고 답하고 싶다는 거다. 삼봉은 고려를 역성혁명을 통해 무너뜨리고 신생 성리학 질서의 나라 조선을 연착륙시킨 설계자다. 의정부-육조-삼사의 구조, 사대부의 붕당정치는 현대 한국의 행정부 체계, 정당정치, 선거제도와 견주어서 보아도 이해가 정말 쉬운 것들이다. 솔직히 제헌헌법에서 갑자기 국무총리라는 묘한 것이 생긴 것은 저 의정부의 흔적 아닌가 하는 음모론에 빠지고 싶어지고 그 모든 것을 사대부 붕당정치의 상호견제 속에 이루어지도록 했다는 것이 정말 당시로서는 혁신적인 정치실험이지 않았을까? 지금도 그렇지만 정파란 늘 권력을 잡기 위해 서로 투쟁을 하는 과정에 뭐든 경쟁을 한다. 여기에서 이제 이 사람들 각자가 다 사대부일 것을 요구한다. 성리학적 인간관에 맞는 선비여야 한다. 인의예지신을 아는 인격자이자 철학자이자 정치가이면서 동시에 행정각부의 실무자여야 하고 여차할 땐 활도 쏠 줄 알아야 한다. 붕당정치에 참여할 사람들 각자가 다 이러한 군자여야 하는 것이다. (물론 현대 대의민주주의 체계에서 그런 인간을 고르고 골라 뽑는다는 건 환상이겠지만 어쨌든 컨셉 자체로 보자.)

2026년이 되어 21세기가 된 후의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를 생각해보면 정말 그 사이에도 많은 변화가 있던 것이 사실이지만 다시 한 번 20세기 후반부터 지금까지 이어지는 한국의 민주주의는 정말 신묘한 발전과정이고 역시 이건 삼봉의 공이 크다는 게 내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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