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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는 열심히 하고 있다는 걸 느끼고 싶을 때

가끔 정말 국회고 뭐고 신경끄고 싶은 날이 나에게도 있다. 내가 아무리 사랑해서 실컷 떠들어봤자 이 모든 일이 아무 소용도, 별 의미도  그냥 내가 좋아서 한다면서 그냥 하기도 하지만 가끔은 국회 뭐 아무도 관심 없는데 나도 걍 신경 꺼버릴까 싶은 날이 있긴 있다. 


그럴 때 의안정보시스템을 본다. 사실 그럴 때가 아니어도 자주 본다. 솔직히 시시때때로 본다. 내가 기어이 싸대 법대까지 등록해서 용을 쓰게 만든 범인은 의안정보시스템일지도 모른다. 국회 보좌진이 쉬지 않고 자기 자리에서 각자 나름대로 열심히 입법을 하고 있다는 것, 그 방대한 범위와 다양한 내용, 관통하는 법의 체계 같은 것들이 늘 나를 끊임없이 흥미롭게 하기 때문에.

여튼 그래서 2025년 11월 5일 기준으로 그 날 접수된 법안을 살펴봤는데 잠깐 간단히만 봐도 '아, 진짜 어딘가에서는 보좌진이 열심히 일하고 있구나' 싶어서 흐뭇했다. 그 몇 건을 잠깐 소개해보려고 한다. 나의 인류애인지 국회애인지를 되살려준 보좌진에게 박수를 보내면서.


1) [2213930] 근로감독관 직무집행 및 권한의 위임에 관한 법률안(김주영의원 등 10인)

- 김주영 의원은 현재 국회 기후에너지환경노동위 민주당 간사를 맡고 있는 한국노총 출신 재선 의원이다. 지역구는 경기 김포시 갑.

- 출신이 한국노총이어도 리버럴 정당 소속이다보니 빌런 짓을 할 수는 없ㄷ...

- 이 법안은 제정법이다. 없던 법을 새로 만든다는 뜻이다. 

- 왜 굳이 새로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는지 보자. 법안의 제안이유는 이렇다.

   — 근로감독관은 사업장 감독을 통해 노동 관계 법령 위반을 사전에 예방하고, 위반행위에 대해서는 수사 및 행·사법처리 등 법 집행을 담당하여 국민의 노동권 보호에 핵심적 역할을 하는 인력이지만 근로감독관에 대한 일반법이 부재하여 직무·권한·집행 기준 등 근로감독관에 대한 사항이 체계적인 근거 없이 개별 법률에 산발적으로 규정되어 있는 실정이다. 

   — 현재 고용노동부와 그 소속기관의 인력만으로는 모든 사업장을 감독하는 데 한계가 있어 더욱 실효적인 사업장 감독을 위해서는 고용노동부와 그 소속기관의 인력뿐만 아니라 지역의 현안을 자세히 파악하고 있는 지방자치단체의 역량을 활용할 필요가 있으나, 지방자치단체 역시 사업장에 대한 관리·감독 여력이 있어도 현행법상 근로감독의 권한이 없어 지역 내 사업장의 노동권 보호에 한계가 있다.  

   — 그래서 별도로 「근로감독관 직무집행 및 권한의 위임에 관한 법률」을 제정하게 되면 근로감독관의 직무·권한·의무·업무 절차 등을 규정하는 등 근로감독 행정의 법적 근거를 마련하여 근로감독관의 노동 관계 법령에 대한 집행력을 제고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할 수 있고 노동행정을 더욱 법률에 근거하여 집행할 수 있도록 이 제정안을 제출하였다고 한다.

- 이와 관련하여 민주당의 환노위원 셋이서 관련 법안을 품앗이하기로 한 것 같다. 의안번호가 각각 2213929, 2213930, 2213931인 걸 보면 세 의원실 보좌진이 백투백으로 접수한 듯. 김주영 간사는 이 법을 통해 근로감독관의 지위와 업무범위를 확립하는 제정법안을 내고, 김태선 위원은 근기법에 있는 근로감독관 규정을 이 제정안으로 이관할 수 있게 삭제하는 근기법 개정안을, 박홍배 위원은 같은 내용을 사법경찰직무법에서 규정하고 있는 것을 삭제하 사법경찰직무법 개정안을 함께 발의했다. 


2) [2213915] 농어민기본소득법안(주철현의원 등 11인)

- 주철현 의원은 전남 여수시 갑 지역구 출신 재선 의원이고 민주당의 전남도당위원장이다. 역시나 호남지역이 농축수산업 모두 크다보니 농해수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 의외로(?) 검사 출신이다. 여수시장을 한 적이 있는데 내년에는 전남도지사 출마를 시사한 상태다.

- 농어민 기본소득. 이미 지방선거 공약으로는 꽤 많이 나왔던 내용으로 기억하는데 아예 국회의 법안으로 제출된 모습을 보니 뭔가 감개무량하기도 하다. 직불금 제도보다 기본소득이 여러 가지 면에서 더 실효적이라는 건 그간의 제도 실시의 역사를 보면 알게 되는 바, 이 법안도 제정법이다.

   — 여기서 이야기한 적이 있던가. 사실 제정법은 그리 자주 접수되는 건 아니다. 없던 법을 뿅 만들어내는 것은 그리 간단하지 않은 까닭이다. 있는 법을 조금씩 고치는 거야 상대적으로 쉬워도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것은 확실히 더 어렵고 전체 법 체계와도 맞아야 하기 때문이다.

- 여튼 그래서 제안이유를 보면...

   — 농어업과 농어촌 자체가 이제는 어떠한 보존의 대상이 되었다는 것으로 인트로를 채웠다. 식량자원의 안정적 공급과 국토의 환경보전 등은 물론 전통문화를 계승하고 지역공동체를 유지하는 다양한 공익적 기능을 한다는 것을 짚었고 그런데 고령화와 인구감소로 위기니까 국가 차원의 지원이 들어가는 것은 당연하다는 당위를 이끌어내고 있다.

   — 현재는 국가가 농어가에 「농업·농촌 공익기능 증진 직접지불제도 운영에 관한 법률」과 「수산업·어촌 공익기능 증진을 위한 직접지불제도 운영에 관한 법률」에 따라 공익직불금을, 다수의 광역지방자치단체는 농민수당 또는 농어민수당을 지급하고 있으나 사회구성원으로서의 농어민의 사회적 기본권을 위한 소득안전망 구축과 기초생활 보장을 위한 기본소득제가 필요하다는 것이 이 법안의 제안 이유이다. 

- 그래서 현금으로 생돈을 준다고 하면 드러누울 사람들이 있을 테니 마련한 장치가 있으니 바로 '지역화폐'다. 

   — 법률안의 제2조에 농어민기본소득을 정의하기를 "농어민의 사회적 기본권을 보장하고 삶의 질을 향상하기 위하여 소득 및 재산에 관계없이 개별로 지급하는 지역화폐"로 하고 있다. 

   — 또한 이를 건전하게 사용할 책임을 농어민에게도 부과한다. 


3) [2213913] 가정폭력방지 및 피해자보호 등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위성곤의원 등 10인)

4) [2213914] 가정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일부개정법률안(위성곤의원 등 11인)

- 위성곤 의원은 제주 서귀포시 출신의 3선 의원이다. 제주대 총학생회장이었으며 열린우리당 출신 제주도의원부터 커리어를 시작해서 국회의원까지 온 꽤 정석인 직업 정치인 경력이다. 

- 현재 행안위원이고 살펴보니 쭉 행안위 쪽 법안을 많이 냈던데 2025년 여름부터 여가위 쪽 법안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보좌진이 생긴 것 같다. 갑자기 이쪽 법안 발의가 등장한다. 

- 왜 두 법안을 같이 놓았냐면 이게 전형적인 쪼개기 법안이어서 설명하려고 연달아 놓았다. 보좌진이 법률 개정안을 준비할 때 선택해야 할 사항 중 하나인데 법안 한 개에 여러 개정사항을 넣을 것이냐, 아니면 조항 하나 하나마다 법안을 따로 준비할 것이냐의 문제다. 

   — 장단점이 있다. 법안 한 개로 하면 도장 한 번만 받아도 되고 법안 하나에 일관성, 통일성을 두고 이쁘게 만들 수가 있다. 그대신 이제 심사과정에서 이건 되고 저건 빠지고 가위질, 풀칠이 되기도 하는데 나중에 잘 알 수가 없고 발의한 사람의 의도가 상대적으로 덜 명확할 수도 있다는 점이 안 좋다. 

   — 조항마다 잘라서 발의하면 법안 발의 실적이 팍팍 올라가고 나중에 심사 과정에서 어떤 내용이 확실히 대안에 반영되었는지 확실하게 알 수 있는 건 좋은데 건건이 도장을 따로 받아야 하고 그러면 귀찮음이 몇 배로 늘어난다는 점이 실무자에겐 몹시 귀찮은 점이 안 좋다. 그리고 요새는 입법 평가를 정성평가하는 곳들도 꽤 있어서 상대적으로 좀 조잡해 보이기도 한다.

- 법안 내용을 각각 보면 역시 법안을 하나로 냈어도 되지 않나 싶긴 한데...

   — 제13913호 법안의 경우는 가정폭력범죄 신고 접수 시에 현장에 출동한 경찰관에게 현장 강제진입에 대한 근거가 없어 가해자가 현장출입을 거절하거나 가해자의 강압으로 경찰관을 돌려보낼 경우 피해자에 대한 적극적인 대처와 보호가 어려운 실태를 지적하면서 현재 정당한 사유 없이 현장조사를 거부·기피하는 경우 500만 원 이하의 과태료를 처분하지만 현실에서 그까짓 과태료 내고 말지, 식으로 나오면 현장조사 거부·기피행위를 제재할 수단이 없는 실정임을 짚는다. 그래서 출동한 경찰관이 긴급한 상황이라는 합리적인 판단이 들면 강제 진입이 가능하도록 근거를 마련하고 현재 과태료인 제재조치를 '벌칙'으로 상향해서 강제성을 더한다는 제안이유를 밝히고 있다.

   — 제13914호 법안은 위 법안과 같이 현행법에서 경찰관이 가정폭력범죄 신고현장에 출동했을 때 응급조치, 긴급임시조치 등을 통해 피해자와 가해자를 분리·격리할 수 있지만, 가해자가 긴급임시조치를 위반할 경우 처벌이 300만 원 이하의 과태료여서 까짓거 과태료 내겠다면서 위반했을 경우 현실적으로 이를 제재할 수단이 없는 실정이라고 위와 마찬가지로 지적한다. 이에 현행 과태료 처분을 '벌칙'으로 상향한다는 마찬가지의 복붙스러운 제안이유이다.

   — 결국 두 법안은 서술부는 똑같고 주부만 다른 두 내용을 법안 두 개로 조각조각 잘라놓은 것이다.

- 사실 뭐 이건 입법실적을 늘려보고 싶은 보좌진의 귀여운 노력이라서 나쁘다 막 그러기는 어렵고 심지어 내용도 다 의미가 있어서 막 놀리거나 흉보고 싶은 마음도 별로 없긴 한데 이거는 사례가 비교적 점잖은 편이고 진짜 자질구레한 오만 걸 다 쪼개서 접수하는 의원실도 존재하긴 한다. 법률용어 고치기나 벌금 올리는 내용, 아니면 타법에서 행정기관, 지방자치단체 관련 내용이 개정되었을 때 연관된 개별법률도 용어를 일일이 수정을 해줘야 하는데 그게 아직 안 된 경우 바꿔줘야 하는 경우인 경우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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