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제폭력', '거절 살인' 같은 용어들이 통용된 것도 여러 해가 흘렀다. 스토킹 처벌법 실시 이후 수많은 사례가 생겼고 그러면서 이제는 '왜 살인을 막을 수 없었나?' 같은 문제제기로 이어진 것이다. 심지어 이제는 재래언론에서도 심심찮게 이 문제를 거론할 정도로. 당연히 많은 여성단체에서가 진작부터 이 문제에 천착하여 갖가지 노력을 해온 결과라고 할 수 있다. 비록 완벽하지는 않았더라도 어쨌거나 스토킹 처벌법 자체가 여성단체들의 오랜 숙원이기도 했었고 말이다.
그런데 이런 일이 있었다.
| 출처 : https://www.mk.co.kr/news/society/12143889 |
많이들 알고 계시겠지만 사건을 요약하면 이렇다. 아주 최근의 일이다. 2026년 9월. 피해자는 가정폭력에 시달리다 수차례 경찰에 신고하고 법원의 접근금지 임시보호명령도 받고 자신의 신변 노출을 막기 위해 지내는 곳을 옮기고 차량 내비·블박 기록을 지우는 등 자신이 할 수 있는 건 다 한 상태였다. 동시에 가해자인 남편과는 이혼소송을 벌이고 있었는데 피해자가 제기한 이혼소송의 서류가 가해자에게 송달되는 과정에서 숨기려고 애썼던 새 주소지가 노출되고 만 것이다.
2025년 7월부터 실시된 민사소송법에 따르면 소송관계인의 생명 또는 신체에 위해를 받을 우려가 있다는 점이 소명된 경우, 신청에 따른 법원의 결정으로, 소송기록의 열람·복사·송달 전에 개인정보 기재부분이 제3자에게 공개되지 않도록 보호조치를 할 수 있게 하였다.
이혼소송은 가사소송으로 특별한 규정이 없으면 민사소송법을 준용하도록 되어 있다. 따라서 위 사건의 피해자 역시 이러한 조치를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솔직히 이렇게 할 수 있는 줄을 보통 사람이 어떻게 알 수 있을까? 신청해야 효과를 얻을 수있게 설계하는 것을 신청주의라고 하는데 이 제도가 딱 그 경우이다. 당사자가 신청하지 않으면 그냥 일반적인 송달로 처리된다. 주소가 다 노출될 수밖에 없다. 그런데 법원에서는 이런 제도가 있음을 안내할 의무가 없다.
그러니 최소한 법원에 소장을 접수할 때, 그리고 전자소송을 접수할 때 모두 이러한 제도가 있음을 반드시 고지하도록 입법을 하여야 한다. 또는 애시당초 이러한 소송에 접수하는 사람이 정확한 주소를 알 필요가 없도록 제도를 설계하는 방법도 있다. 아니면 가정법원에서 가정폭력 신고 이력, 스토킹범죄 신고에 따른 임시조치, 접근금지 명령 같은 것이 달려 있으면 당연하게 직권으로 정보를 비공개조치할 수 있도록 할 수 있다. 이렇게 할 수 있었다면 위 사건의 피해자는 지금 죽지 않고 살아 있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나마 공식적인 제도의 도움을 받을 구석이 많은 결혼한 배우자와의 단절도 이러한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데 혼인관계가 아닌 친밀한 관계에서 교제폭력이 발생한 뒤에 안전이별하는 데에는 더 큰 어려움이 있다.
현행 가폭법은 교제관계를 포섭하지 않는다. 친밀함이나 관계성을 기반에 둔 폭력사건이라는 점은 일치하나 법적 혼인관계가 아니기 때문에 피해자들이 가폭법 상의 보호를 구할 근거가 없는 것이다. 그나마 스토킹 처벌법이 생기면서 그에 따른 신고를 하고 보호조치를 요청하는 정도이다.
| 출처 : https://www.khan.co.kr/article/202405082109025 |
| 출처 : https://www.nocutnews.co.kr/news/6132471 |
| 출처 : https://imnews.imbc.com/news/2024/society/article/6591468_36438.html |
형법 상의 폭행이나 협박죄로 신고하는 것은 당연히 가능하고 실제 교제폭력에 대한 입법방안을 내놓으면 반대하는 논리의 대부분이 '기존 법 체계에서 처벌 가능하다'는 논리이다. 하지만 여태 그 제도가 없었던 적이 없는데 여성은 계속 죽고 있다. 그렇다면 법을 바꿔야 마땅하지 않은가?
교제폭력으로 신고를 했으면 처벌불원 의사가 있어도 일단 무조건 가해자와 피해자를 분리하는 방안으로 입법을 추진할 필요성이 있다. 위의 거제 교제폭력 사건은 피해자가 11번이나 신고를 했다가도 출동한 경찰관에게 처벌불원의사를 밝혀 아무런 추가 조치도 이루어지지 않았다.
가해자에 대한 GPS 추적 감시도 필요하다. '접근금지' 명령만 내려놓고 아무런 감시도 하지 않으면 그건 가해자를 가두는 게 아니라 피해자가 자기감금을 하게 만드는 조치이다. 스마트워치가 있어도, 피해자는 가해자가 어느 정도 가까운지만 알 수 있고 어디에서 접근해오는지 그런 상세한 정보는 알 수가 없어서 결국 안전하다고 생각되는 곳에만 머물게 되고 근접사실을 알게 되어 경찰에 순찰을 요청하거나 출동을 요청해도 경찰이 오는 것보다 가해자의 공격이 더 빠르면 속수무책이다.
왜 피해자가 자기 일상을 유지할 수 없고 가해자는 활개치며 피해자를 괴롭힐 자유를 누릴 수 있는 건지, 걸려봐야 깽값 정도인 벌금 좀 물 생각으로 피해자를 해치려 접근하게 놔두는 건지 어째서 그렇게 신체의 자유를 가해자만이 누리는지 교제폭력 가해자에 대한 더 강력한 임시조치는 그렇게 신성불가침의 권리인지 자꾸만 여자사람이 죽는 이 와중에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 출처 : https://www.seoul.co.kr/news/society/2026/09/16/20260916010010 |
스토킹 가해자에 대한 스마트워치 지급은 해가 갈수록 늘어가는데 가해자의 발을 묶는 조치는 웬만하면 이뤄지지 않는다. 현재 스토킹 처벌법 상 잠정조치는 다섯 가지다.
| 출처 :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442625 |
서면 경고, 물리적인 제한이나 감시가 없어 단순 선언에 불과한 접근금지는 솔직히 잠정'조치'라 할 수 있는지도 잘 모르겠다. 미국은 아예 피해자의 주거지나 직장 같은 주요 생활공간 위주로 명령을 내린다는데 단순 명령 외에 좀 더 실효적인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
위에서 나온 사례 중 김레아에게 살해 당한 피해자와 그 상해를 입은 모친은 정말 안전이별을 위해서 계약서라도 쓰자고 시도했다가 목숨을 잃었음을 생각해본다면 안전이별을 위한 법적 장치는 더 필요하다. 제발 피해자가 안심하고 생활할 수 있는 쪽으로 입법이 많이 추진되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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