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관에서 일할 때 언어 성폭력을 당한 적이 있다. 비록 정도는 매우 낮은 수준이지만.
최근 조국혁신당 내부의 성폭력과 직장 내 괴롭힘 사건이 내부에서 합당한 해결과정 없이 피해자들이 2차 피해가 해결되지 않았다는 고발이 터져 나온 뒤에 PTSD까지는 아니지만 옛날 생각이 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나는 태생이 진입장벽이 높은 편이다. 좋은 쪽으로든 나쁜 쪽으로든 진입장벽이 높은 편이라서 우울증이 심하던 시절 외에는 '도를 아십니까'도 그닥 붙지 않는 편이었고 온라인에서조차 댓글, 멘션, 인용 같은 게 정말 안 달리는 편이다. 은근한 관종인 처지에서는 서운할 때가 많지만 사실 편리할 때도 많다. 귀찮은 일에 휘말릴 위험이 적은 편이기는 하니까. '진입장벽이 높다'는 평가에 사유로 붙는 것은 대개 '세 보인다'는 인상평이다. 나는 지금 다니는 회사의 면접관이었던 이사님으로부터 입사하고 몇 년이나 흐른 뒤에 채용 당시에 '괜찮기는 한데 세!'라는 코멘트가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물론 난 '이사님이 약하신 건 아니고요?' 싶었지만 여튼 학부 때도 어떤 후배가 '선배는 다크포스가 있어요!'라는 말을 하기도 하고 중학생 때도 후배도 아닌 동기가 내가 무섭다면서 부 활동을 그만두기도 했다.
그랬기 때문에 생각보다 엄청나게 많은 한국여성이 보편적으로 당하는 갖가지 성희롱도 상대적으로는 피해가 적은 편이었다. 그렇다고 없는 것은 아니지만. 사실 나는 내가 세 보여서 그런 피해가 비교적으로 별로 없었다는 걸 잘 몰랐는데 중학교 2학년 정도 이후로는 학교에서 변태교사들의 행태로 인해 확연히 그 차이를 알게 됐었다. 어쨌든 살면서 그러한 몇 안 되는 불쾌한 경험들에 국회 불가촉천민 시절이 포함돼 있다. 영감이든 보좌관이든 나를 무시하기는 했겠지만 그렇다고 내게 말을 함부로 하는 인간은 진짜 일생을 통틀어 얼마 되지 않는데 그 인간은 왜 그런 극히 예외적인 썁소리를 지껄였을까.
일단 저런 나에 대한 배경지식을 두고 구체적인 사건을 서술해 보자면 그 때는 지금보다 어리기도 했고 잠 모자라고 출퇴근 거리 멀고 끼니 제대로 못 챙기고 이리저리 뛰어다니고 할 때라서 지금보다 좀 말랐었다. 사건이 있던 당일에는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아침 수행 일정을 마치고 본청에서 대기하고 있다보니 점심 먹을 시간이 다 된 때였다. 회관에 있던 보좌관 새끼가 보고 드릴 게 있다면서 점심 먹으러 가는 동안 차에서 이야기하겠다며 차를 타고 본청 근처까지 왔다. 영감이랑 차를 딱 탔는데 보좌관 새끼가 '마저리 너는 밥 좀 먹고 다녀라. 허리가 한 줌이네.' 이딴 소리를 대뜸 하는 것. 나는 (1) 기분이 더러웠고 (2) 지적하지 않고서는 못 견딜 것 같았으며 (3) 그러나 좀 괜찮게 말할 방법이 없을까? 싶어서 '보좌관님 요즘 그런 말씀 하시면 성희롱입니다하하하하하하하하' 하고 웃었다. 영감도 나를 거들어서 '맞다. 말 조심해라.'하고 그 상황은 일단 지나갔다.
그러나 폭탄은 그날 오후에 터졌다. 보좌관 새끼가 한 서너 시쯤이던가? 사무실에서 '마저리 너는 근데 아까 그 말이 진짜로 성희롱이라고 생각하냐?'라며 방의 모든 직원이 다 듣는 데서 잡도리를 시작한 것이다. 그렇다고 말했다. 그런 말씀 하시면 안 되고 평소에도 위험한 말씀들 하신다고 있는 그대로 말했다. 나 말고 방에 한 명 더 있던 여성 비서님한테도 뭐 간식을 먹여 달라는 둥 썁짓거리를 해서 안 그래도 속으로 부글부글한 적이 있었는데 기왕 이렇게 된 거 나도 '에라 모르겠다 대방출하자' 싶어서 너 그때 그런 것도 하면 안 되는 것이었다고 다 말해버렸다. 그리고 저녁 8시가 될 때까지도 계속 씩씩거리면서 내가 '아까 그 말은 성희롱이 아니다'를 인정하기를 강요했다. 내가 끝까지 인정하지를 않으니까 이 치졸한 새끼가 나 말고 다른 여성 비서님의 업무를 가지고 트집을 잡기 시작하는데 그 비서님은 내게 원망하거나 탓을 하지 않았지만 나는 너무 미안했고 그냥 내가 썁새끼한테 미안하다, 성희롱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말하고 이 사태부터 종결을 지어야 하나 괴로웠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그 보좌관 새끼는 '감히 너따위가 나를 성희롱범으로 지목해?'+'감히 네까짓 게 나를 성범죄자 같은 저질스러운 말로 정의해(실제 자신이 성범죄를 저질렀다는 인식은 불가능함)?' 같은 심정이었을 거라고 추정이 되고 나 말고 내 옆의 동료를 괴롭히는 방식까지도 너무 지금 보면 그림 같은 직장 내 괴롭힘인데 그 일이 나에게 실시간으로 일어날 당시에는 정말 괴롭게도 빠져나갈 틈따위는 보이지도 않았다. 그리고 당시 같은 사무실 안에서 같이 잡도리를 듣고만 있던 다른 남자 비서들도 그냥 듣고만 있지 '그쯤 정리하자'든지 '지나치시다'든지 보좌관 새끼를 멈추려 들어주는 인간도 하나도 없었다.
그래서 조국혁신당 사태를 뒤늦게 알게 됐을 때 당내의 분위기나 구성원의 됨됨이가 물론 내가 겪은 상황과 같을 수는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정치권 안의 개저씨들이 공통적으로 보이는 어떤 행태와 태도, 조직 안에서의 침묵으로 동조하는 사람들과 더 나아가 2차가해까지도 서슴지 않는 사람들에 대한 건 자동적으로 상상이 되어버렸다. 더구나 조국혁신당 언어 성폭력 사건의 가해자는 당직자들의 면접을 직접 다 봤던 인사권자로 볼 만한 사람이었다는 말을 듣고 한숨이 푹 나왔다. 내 사건의 보좌관 새끼도 내가 출근한 첫날 나한테 했던 첫 마디가 '나는 사실 마저리 너가 여자라서 뽑지 말자고 했는데 영감이 뽑자고 한 거다'였다. 하물며 인사권을 진짜로 좌지우지 하는 사람의 성희롱을 고발했는데 조직이 (당연하게도) 내 편이 아닌 상황이라니. 그 상태로 몇 달을 끌고 그 조직 안에서는 나름대로 메시아처럼 여긴 당대표에게 손편지를 10장씩 써가며 호소를 해봐도 해결이 안 됐고 그건 옥중이라 그랬으려나 하며 출소를 한 뒤에도 기다려봤지만 돌아오는 것이 침묵뿐이라면?
출처 : https://www.hani.co.kr/arti/politics/politics_general/1218609.html |
이런 보도를 보았는데 솔직히 아직도 뭐가 문제인지 모르는 것 같다. 원래 모든 조직은 기본적으로 남녀동수를 맞추는 게 기본이고 어쩌다 한둘 정도 한쪽이 많은 건 그냥 당연한 일이어야 한다. 여성 과반으로 하는 걸로 보도자료 내며 생색낼 일이 아니라는 거다. 그리고 아홉 명 중 다섯 명인 걸로 생색을 내려 하다니 기가 찬다. 생색을 내려거든 아홉 명 중 여덟 명은 될 때 생색이 나는 거 아닌가? 그리고 보도자료 내용도 아주 휘황찬란(n)하다.
출처 : https://rebuildingkoreaparty.kr/news/press-release/5099 |
여성 강조한답시고 '여' 표시해놓은 걸 보고 있으니 머리가 아파지려고 한다. 부디 이번 사건을 통해 당에 조직 내 성폭력 사건을 엄중하게 처리할 절차와 규정이 마련되고 진짜 '혁신'할 수 있기를 바란다. 하지만 솔직히 전망이 밝다는 말은 못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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