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해자는 그동안 실질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왜냐하면 형사사건의 피해자는 놀랍게도 '재판 당사자가 아니'기 때문이다.
형사소송법 교과서에는 공판을 다루는 편의 맨 앞장에서 소송주체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 소송주체 : 소송법적 법률관계의 주체로서 소송법적 권리·의무의 귀속주체가 되는 자로서 소송법상 독자적 권한을 가지고 그의 행위에 의하여 소송을 성립·발전시킨다.
- 소송주체의 종류
법원 : 재판권의 주체
검사 : 공소권의 주체
피고인 : 방어권의 주체
- 소송관계인 : 소송주체는 아니지만 소송주체의 보조자 역할을 수행하는 자. 피고인의 보조자인 변호인과 보조인 및 대리인, 그리고 검사의 보조자인 사법경찰관리가 있다. 또한 우리 형사소송법은 증인과 감정인도 소송관계인으로 하고 있어 증인·감정인·고소인·고발인 등도 소송관계인에 포함된다고 본다.
간단히 줄여보면 피해자는 형사소송의 주체가 아니라는 뜻이다. 사실 잘 이해가 안 된다. 누구보다 당사자인 것 같은데 소송주체가 아니라니. 피해자야말로 해당 사건의 피고인에 대한 공소사실이 유죄로 인정되어야 자신의 피해사실을 법적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매우 직접적인 이해관계가 있는 지위에 있다. 형벌권을 국가가 독점하는 오늘날 피해자의 정의실현 욕구는 형사절차를 통해서만 온전히 실현된다고 할 것이다.
물론 형사피해자에게는 헌법이 보장하는 진술권이 있다. 피해자는 형사절차에 참여하여 법관에게 형벌권 행사를 청구할 수 있다. 또한 피해자는 헌법 제30조에 따라 범죄피해자구조청구권을 갖는 주체가 된다.
수사 단계와 공판 단계에서 피해자를 보고하거나 형사사법절차에 참여할 수 있는 권리를 간단하게 정리해보면 아래와 같다.
1. 수사단계
- 고소 : 피해자는 수사기관에 고소할 수 있다. 현재 피해자가 피해사실을 최초로 고소할 당시에 형사사법정보를 제공 받을 수 있는 제도가 없다. 따로 변호사의 법률 조력을 받아야 하는 경우가 많다.
- 수사절차진행 중 정보권 : 사실 형소법에도 범죄피해자 보호법에도 수사 중에 진행상황 통지에 관하여 별도 규정이 없다. 다만 검사와 사법경찰관의 상호협력과 일반적 수사준칙에 관한 규정에서 통지에 관해 규정하고 있을 뿐이다. 아래와 같은 규칙이 존재하지만 여전히 수사진횅상황을 통지 받지 못했다는 피해자는 존재한다(사실 많아 보인다).
- 피해자변호사 선임 및 조력 : 성특법 등 일부 법률에만 근거규정을 두고 있는데 피해자에게 법률적 조력을 제공할 변호사를 선임토록 할 수 있다. 경우에 따라서는 피해자에 대하여 국선변호인을 필요적으로 선정하게 되어 있다. 이렇게 선임된 피해자변호사는 수사참여권 및 의견진술권을 가지고, 피의자에 대한 구속 전 피의자심문기일 및 증거보전절차 참여권 및 의견진술권을 가지며, 증거보전 후 관계 서류 및 증거물에 대한 열람·등사권을 가진다.
- 이외에도 수사진행단계에서 피해자를 보호하기 위한 제도로는 신뢰관계인 동석제도, 진술조력인제도, 가명조서제도 등이 있다.
- 수사기관의 수사(처분)결과 통지 : 경검은 처분을 하게 되면 결과와 그 이유를 피해자에게 통지해야 한다. 기본은 우편 발송이고 문자통지도 할 수 있다. 다만 문제는 고소인이 아닌 피해자의 경우는 피해자가 신청하지 않으면 처분결과를 알 수 없다. 이게 피해자가 원치 않아서 신청 안 할 수도 있겠으나 제도를 몰라서 신청 못 하는 경우에는 정보권의 불균형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
- 불송치결정/불기소처분 사건 기록 열람·등사 : 피해자는 이러한 권리가 있으나 실무에서 신청하더라도 불허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 검사의 불기소에 대한 불복수단 : 고소·고발인의 경우는 검사의 불기소에 대하여 고등검찰청에 항고가 가능하다. 이 항고가 기각되면 검찰총장에게 재항고를 할 수도 있고 고등법원에 재정신청도 할 수 있다. 재정신청은 형사소송법 제260조에 규정되어 있는데 고소·고발인이 법원으로 하여금 검사에게 공소제기를 강제하도록 해달라는 신청이다. 고소·고발인이 아닌 피해자의 경우는 검사의 불기소에 대하여 바로 헌법소원을 넣을 수 있다.
2. 공판단계
- 19세미만피해자등에 대한 증인신문을 위한 공판준비절차 : 성특법 제40조의2에 규정된 내용으로 19세미만피해자등을 증인으로 신문하려는 경우에 대하여 따로 절차를 규정하고 있다.
- 공판 진행 중 피해자 및 피해자변호사에 대한 통지 : 형소법은 검사에게 성특법은 법원에게 통지 의무를 주면서 통지 대상으로 형소법은 피해자, 성특법은 피해자변호사를 규정하고 있어서 다소 제도가 어지러운 상태다. 이게 애매한 관계로+신청해야만 통지 받을 수있다는 걸 몰랐던 피해자들에게 정보권 격차가 발생한다.
- 소송기록 열람·등사 신청 : 형소법에서는 피해자가 재판부의 허가를 받아 열람·등사할 수 있도록 하고 있는데 실무에서는 어떤 재판부냐에 따라서 이 허가 여부가 많이 갈린다고 한다. 또한 불허하는 경우에도 사유가 공개된다든지 불복 절차가 마련돼 있지도 않아서 제도의 취지가 퇴색되고 있다는 지적이 있다.
- 미성년 성폭력 피해자 진술에 대한 증거능력 특례조항 : 조두순 사건의 피해아동이 반복되는 피해진술 속에서 고통 받은 것에 대한 반성으로 생긴 특례조항이었는데 2023년에 다시 개정되어 피해자의 반복진술을 피할 수 없게 되었다. 이는 2022년 헌재 결정에 따른 것으로 하... 할 말은 많지만 열 받아서 하지 않겠다.
- 피해자변호사의 조력 : 현행법상 성폭력범죄 등 일부 경우에 법률로써 피해자가 피해자변호사의 조력을 받을 권한을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공판정 내에 자리가 마련되어 있지도 않고 출석을 확인하는 것도 아니어서 좀 애매한 제도의 느낌이 있다.
- 재판절차진술권 : 위에서 언급한 헌법 상 명시된 권리이다. 1987년 개헌 때 형소법도 개정하여 이 내용을 구체화하였다. 재판절차진술권의 주체는 범죄피해자 또는 그 법정대리인이고, 진술의 내용은 피해의 정도, 결과, 피고인 처벌에 대한 의견, 그 외 해당사건에 관한 의견이다. 방식은 증인신문이 원칙이지만 의견서나 탄원서 같은 서면도 허용한다. 다만, 피해자가 증인으로 출석하느 경우에도 이 진술권에 대해 잘 알지 못하여 기회를 잘 활용할 수 없기도 하고 증인이 아닌 피해자의 경우는 의견진술절차가 따로 공식적으로 존재하지 않아서 의견진술이 쉽지 않다.
사실 이 이야기를 시작하게 된 건 새로 접수된 법안 이야기를 하려고 했던 거였는데 이 얘기를 하지 않고 그 얘기를 할 수는 없어서 부득이하게 이렇게 서론이 길어져버렸다. 개정안 이야기는 다음 포스팅에 이어보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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