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의원이 3백 명이면 보좌진이 3천 명이다. 내가 아무리 '아 뭐 포스팅하지?' 고민해도 나의 존경하는 보좌진 여러분이 나를 심심하게 놔두지 않는다. '오 이렇게도 되는구나!', '이런 문제가 있었구나!' 하고 나를 깨우쳐주는 수많은 법안이 매일매일 접수된다. 최근 접수된 법안 중 눈길을 끈 법안을 몇 가지 소개해본다.
물론 법안 얘기는 포스팅하면 가장 관심을 못 받는 포스팅 종류지만 하지만 내가 좋아하니깐.
1) [2215170] 5·18민주화운동 관련자 보상 등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박찬대의원 등 10인)
[2215171] 5·18민주유공자예우 및 단체설립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박찬대의원 등 10인)
― 아무래도 시기가 시기이다보니 눈이 간 법안. 두 법안은 서로의 개정을 전제로 내용이 구성되어 있다.
박찬대 의원실에서 이 내용의 법안을 발의한 것은 처음이 아니다. 제20대 국회 때 2017년에도 발의를 했었다. 위르겐 힌츠페터 씨는 2016년에 별세했고 생전에 광주에 묻히기를 희망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유가족은 현실적으로 유해를 다 옮기는 것은 어렵다 판단하고 일부가 안장되기를 희망했다. 현재는 망월동 구묘역 입구에 추모비와 함께 유품이 안장되어 있다. 고인이 독일인이고 그 나라의 관습 상 한국식 봉분을 만드는 것이 다소 어색한 일이어서 이렇게 안장된 것이기도 하지만 사실 또 한편으로는 엄밀히 법적으로 힌츠페터 씨가 한국의 민주화 유공자가 될 수 있는 근거가 없기 때문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래서 이 두 법안의 제안이유는 아래와 같다.
현행법에서는 이 법 적용 대상인 5·18민주화유공자로서 5·18민주화운동사망자 또는 행방불명자, 5·18민주화운동부상자, 그 밖의 5·18민주화운동희생자로 규정하고 있으며, 이에 따라 「국립묘지의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률」 제5조의 국립5·18민주묘지 안장 대상자 요건에도 적용되고 있음.
그런데 5·18민주화운동에 큰 공헌을 한 외국인 위르겐 힌츠페터와 찰스 헌틀리의 경우 본인들이 사후 한국에 안장되기를 희망하였을 뿐 아니라 특히 위르겐 힌츠페터의 경우에는 5·18기념재단에 의하여 추모비 건립 및 추모공원까지 조성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법적 근거가 없음으로 인하여 5.18민주유공자로서의 예우와 국립5·18민주묘지 안장이 불가능한 실정임.
이에 5·18민주화운동공헌자에 대한 법적 근거를 마련함으로써 민주주의를 위한 공헌에 합당한 예우를 하고자 함
현행 5·18유공자법 상 적용대상자는 법 제4조에 규정되어 있는데 5·18민주화운동사망자 또는 행방불명자, 5·18민주화운동부상자, 그리고 그 밖의 5·18민주화운동희생자로 규정되어 있다. 힌츠페터 씨의 경우에는 이 분류에 속하지 않기 때문에 민주묘지 안장이 규정 상 어려운 상태이다. 따라서 조문에 있는 "그 밖의 5·18민주화운동희생자"를 "그 밖의 5·18민주화운동희생자 및 5·18민주화운동공헌자"로 넓히고 "5·18민주화운동과 관련하여「5·18민주화운동 관련자 보상 등에 관한 법률」에 따른 5·18민주화운동관련자보상심의위원회의 심사·결정에 따라 공헌이 인정되는 사람"을 보상심의위가 심의할 수 있도록 한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 정무위의 민병덕 의원은 보훈부 권오을 장관에게 국감 때 질의도 한 바가 있다.
영화 '택시운전사'의 실제 인물로 알려진 김사복 씨도 유공자가 아니라고 하니 역시 이 법을 손볼 필요는 충분히 있는 것으로 보인다.
2) [2215189] 산업안전보건법 일부개정법률안(박홍배의원 등 15인)
― 일단 이실직고하고 시작하면 뭐 하시다 국회의원 된 분인지 몰랐다. 법안 내용을 보다가 '뭐 이렇게 내용이 정치精緻하고 좋지?'하고 뒤늦게 영감 프로필을 검색해보니 금융노조 위원장 출신이고 중노위 근로자위원 출신이시더라. '법안 그거 다 보좌진이 하는 거라며!' 맞다. 하지만 역시 영감이 전문가이고 관심사항인 경우라면 법안 때깔이 다르게 나올 수밖에 없다.
이 개정안의 제안이유를 읽다가 남다른 때깔에 감탄하고 말았다.
건설업 등 다단계 도급 구조에서는 산업재해 예방을 위하여 계상되는 산업안전보건관리비가 실제 현장에서 적절히 사용되지 않거나, 목적 외로 전용되는 관행이 반복적으로 지적되고 있음. 현행 제도는 도급인을 중심으로 관리비의 계상 의무를 규정하고 있어 하도급 단계에서의 책임과 집행 기준이 불명확하고, 도급 구조 전체에서 관리비가 균형 있게 집행되기 어려운 한계가 있음.
특히 건설공사도급인과 하도급 계약을 체결한 수급인 등 안전관리의 실제 주체가 다양해지고 있음에도 관리비의 목적 외 사용을 제한하는 규정은 여전히 도급인에게만 적용되어 제도 취지가 충분히 구현되지 못하여 산업안전보건관리비가 핵심 예방 활동에 투입되지 못하는 사례가 발생하고 있음.
이에 건설공사도급인뿐 아니라 하도급계약을 체결한 수급인 등 모든 관련 주체가 산업안전보건관리비를 목적 외로 사용하지 못하도록 하고, 원청의 산업안전보건관리비 계상 의무를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업종까지 적용범위를 넓히며, 부정 사용 예방을 위해 하청에게도 사용명세서를 작성하도록 하는 등 안전보건 확보 의무를 강화하여 제도의 실효성을 제고하려는 것임(안 제72조 및 제175조).
제조업, 특히 건설업 현장에서는 산업안전보건관리비가 원래 목적에 맞게 사용되지 않는 경우가 허다하고 원청은 우리는 돈 집행했으니 의무를 다 해서 끝이라는 식으로 배째라 하기 마련이다. 이런 원청과 사용자 측 무책임함에 제동을 거는 내용이다. 영감도 이 방면의 경험이 있는 사람이지만 마찬가지로 보좌진도 이 방면으로 평소부터 여러 가지로 준비가 되어 있는 분이실 것 같다. 좋은 법안에 감탄했다.
3) [2215172] 여수·순천 10·19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 일부개정법률안(권향엽의원 등 21인)
― 여순사건의 희생자 또는 유족이 국가에 대해 손배청구를 해야 하는데 법상 손배 청구권에 대한 별도 규정이 없어 민법상 소멸시효가 적용이 되고 있는데 이렇게 되면 소멸시효를 계산하는 기준시점이 피해자가 그 손해 및 가해자를 안 날 또는 불법행위가 있던 날부터다. 민법 제766조에 의해서 불법행위로 인한 손배 청구권은 피해자가 그 손해 및 가해자를 안 날부터 3년, 불법행위가 있던 날부터 10년이다. 여순사건의 희생자에게 국가폭력이 있던 날부터 10년이 손배 청구권 소멸시효라니 지금 누구랑 장난하는 것도 아니고... 그래서 2018년 8월 30일에 헌법재판소는 2014헌바148 사건에 대한 전원재판부 결정으로 "민법 제166조 제1항, 제766조 제2항의 객관적 기산점을 과거사정리법 제2조 제1항 제3, 4호의 민간인 집단희생사건, 중대한 인권침해조작의혹사건에 적용하도록 규정하는 것은, 소멸시효제도를 통한 법적 안정성과 가해자 보호만을 지나치게 중시한 나머지 합리적 이유 없이 위 사건 유형에 관한 국가배상청구권 보장 필요성을 외면한 것으로서 입법형성의 한계를 일탈하여 청구인들의 국가배상청구권을 침해한다."라며 단순위헌 결정을 내렸다.
그래서 이 개정안은 여순사건에 따른 손해배상 청구권의 소멸시효의 적용을 배제한다는 내용이다.
사실 헌재에서 위헌 결정난 법안을 개정하는 건 쉬운 법 개정이다. 보통 우리의 입법의 여러 가지 경로 중 '인턴 실습용'으로 널리 사용되는데 그 이유가 쉽기 때문이다. 제안이유가 명확하게 헌재 결정문으로 남아 있고 방향도 처음부터 뚜렷하게 잡혀 있다. 아울러 개정의 가능성도 높고.
그러나 그럼에도 꼭 필요한 법안이기에 눈길이 갔다. 사실 이게 특별법에 규정이 없다는 것부터가 이상한 일인 것도 맞기에.
4) [2215193] 근로기준법 일부개정법률안(김소희의원 등 10인)
― 지금까지는 좋은 쪽에서 눈길을 끄는 법안이었는데 마지막은 나쁜 쪽으로, 그것도 아주아주 사악한 쪽이어서 눈길을 끈 법안이다. 바로 이 포스트의 주인공.
몹시 당연하게도 대표발의자인 김소희 씨와 찬성자가 모두 다 내란 순장조 소속임을 밝혀둔다. 왜 사악하다고 했는지 제안이유 및 주요내용을 보자.
현행법은 1주 간의 근로시간을 40시간을 초과할 수 없도록 하고, 1일의 근로시간은 8시간을 초과할 수 없도록 하고 있으며, 당사자 간에 합의하면 1주 간에 12시간을 한도로 근로시간을 연장할 수 있음.
하지만, 근로시간 배분 및 업무수행방식 등에 있어 근로자 개인의 자율성이 커지는 글로벌 경쟁 시대에 기업들이 대응하기 위해서는 일부 업무에 있어 근로시간 규제 적용의 제외가 필요함. 특히, 고도의 창의성과 자율성이 요구되는 연구개발 업무에 종사하는 사람의 경우 획일화된 현행 근로시간 제도를 그대로 적용하는 것은 업무 특성에 맞지 않음.
이에 신상품 또는 신기술 등 연구개발 업무에 종사하는 사람에 대해서는 현행법상 근로시간, 휴게와 휴일에 관한 규정이 적용되지 않도록 예외를 두고, 주52시간제 적용 예외에 따른 근로자의 건강 보호를 위한 사용자의 조치 의무를 마련하려는 것임(안 제63조의2 신설).
우선 밝혀두겠는데 한국은 주 40시간제다. 주 52시간은 노사 당사자 간 합의 시에만 연장 가능한 시간 12시간을 더한 것이다. 디폴트 값이 아니라는 말이다. 디폴트는 주 40시간이다.
이 법안은 '신상품 또는 신기술 등 연구개발 업무에 종사하는 사람'이라는 알량한 단서를 달아 이 직군의 노동자에게는 주 52시간보다도 더 노동을 하게 하도록 허용하겠다는 연장노동 12시간 상한제 파괴법이다. 왜 파괴되느냐고? 이 법이 만약에 개정 및 시행된다고 치면 이제 엄청 넓은 범위의 노동자가 갑자기 회사에서 '연구원'이라는 직함을 달게 된다. 많은 회사가 갑자기 '회사 부설 연구소'를 설치하게 된다. 이렇게 되면 당장은 법안에서 사용자의 노동자 건강 보호 조치 의무를 마련한다고 쳐도 실제로는 지켜지기 어려운 경우(수당까지 합쳐서 임금이 되는 경우) 때문에 노동자의 건강권이 문제가 되고 나아가서는 이러한 노동 조건을 견디지 못 하고 실제 연구인력의 경우는 한국을 떠버린다거나 또는 다시 수능 쳐서 의대를 간다거나 또는 공무원 시험에 몰린다거나 뭐 그딴 일도 그다지 허황된 상상이 아니다.
공화국의 시민은 내란 척결에 골몰하고 나라의 장래를 걱정하고 있는데 내란 순장조들은 이렇게 부지런히 나라 망칠 일들을 하고 있다는 것이 너무 소름이 끼친다. 통과될 거라 생각하지 않지만 이런 시도를 한다는 것 자체가 너무 끔찍하다. 어서 해산되고 뺏지 좀 떨어졌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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