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학사 나부랭이가 알 수 있는 거라곤 헌법학 교과서 정도뿐이다. 졸려서 너무 힘들었지만 헌법일반이론과 행정법총론을 가르쳐주신 교수님께 감사 인사를 전하며 우선 오늘의 시작은 '통치 행위'에 대한 김남철 교수님의 '행정법강론' 내용 요약으로 하고 싶다.
통치행위란 일반적으로 "고도의 정치적 의미를 지닌 국가기관의 행위에 대하여 '사법적' 심사가 가능함에도 재판통제에서 제외하는 행위"로 정의한다. 이는 역사적으로 법에서 자유로운 행정의 영역으로 각국의 학설과 판례를 통해 성립된 것으로 본다. 한국의 법학자들은 통치행위의 존재를 통상 인정하지 않는 편이지만 현실적으로는 통치행위를 인정하더라도 범위가 매우 제한적이어야 하고 만일 어떤 통치행위가 법률적으로 다툴 만한 송사가 될 만한 일이라면 법원이나 헌재의 심사 대상이 되어야 한다고 본다. 이와 관련하여 2004년에 꽤 선언적이라고 할 만한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대법원 2004. 3. 26. 선고 2003도7878 판결)
중요한 것은 1) 통치행위 개념은 인정하나, 2) 기본권 보장과 법치주의 이념을 실현해야 할 법원의 책무를 해태하지 않도록 과도한 자제를 하지 않아야 하며 3) 그러한 판단은 오로지 사법부 스스로 내려야 한다는 것이다.한국의 대법원은 과거 비상계엄선포에 대하여 사법심사의 대상이 아니라고 한 바(대법원 1979. 12. 7. 79초70 재정, 여담이지만 이 사건의 피고인은 김재규였다.)가 있다.
중요한 것은 가운데 부분이다. "그 선포의 당, 부당을 판단할 권한은 헌법상 계엄의 해제요구권이 있는 국회만이 가지고 있다 할 것이고"라고 명시하고 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중요한 것은 '그 선포가 당연무효인 경우라면 모르되'라고 하여 계엄선포가 당연무효인 경우라면 법원의 심사 대상이 될 수도 있다는 여지를 남겨두었다. 만일 계엄선포가 위법한 근거와 부적법한 절차에 의하여 이루어졌다면 당연히 사법부가 내란죄든 외환죄(일반이적죄)든의 혐의로 재판을 통해 심사하고 처벌할 수 있다는 것이다.
자, 이렇게 바탕을 깔고 전광석 교수님의 '한국헌법론'에서 설명하는 대통령의 계엄선포권 내용을 좀 요약해보도록 하겠다. 내가 덧붙이는 부분은 다른 색깔로 표시한다.
1. 총론
1-1) 계엄선포권은 대통령에게 부여된 국가긴급권 중 하나이다. (다른 걸로는 긴급재정명령 및 처분권, 긴급명령권이 있다. 긴급재정명령의 가장 유명한 사례는 문민정부 때의 '금융실명제 실시'이고 긴급명령권은 유신헌법 때 자주 선포되던 긴급조치가 예시이다.)
1-2) 계엄선포권은 행정/사법분야에서 한시적인 군사통치를 행하는 대통령의 권한이다.
1-3) 통상적인 것이 아니고 개인의 권리의무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므로 법률에 의하여 선포한다. *자의적인 판단과 위법한 절차에 의한 선포를 해서는 안 된다.
2. 선포요건
2-1) 국가비상사태 : 전시, 사변 또는 이에 준하는 국가비상사태. 적과 교전상태에 있거나 사회질서가 극도로 교란된 상황 중일 때여야 하며 위기상황이 예견되는 경우 사전에 예방하기 위한 목적으로 선포할 수 없다. *예방적, 경고성 계엄은 허용되지 않는 썁소리다.
2-2) 국가기능 유지를 위한 군사상의 필요 : 국가비상사태에서 행정 및 사법기능 수행이 현저히 곤란한 상황이어야 하는데 전시, 사변, 교전 상태 등이어서 군사상 필요가 있다든지 공공의 안녕질서를 유지해야 할 때 비상계엄을, 일반행정기관 개입으로 치안을 유지하기 힘든 상황에서 질서유지가 필요할 때는 경비계엄을 선언한다. 공공복리 증진 같은 적극적인 목적을 위한 계엄은 선포할 수 없다. *계몽령이라는 말을 하는 것 자체가 선포요건을 갖추지 못 했다는 자백이다.
2-3) 계엄법 준수 : 계엄법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선포해야 한다. *내용이든 절차든 이미 어긴 게 너무 많이 보인다.
3. 계엄조치 내용 : 헌법은 비상계엄 선포 시 영장제도, 언론/출판/집회/결사의 자유, 정부나 법원의 권한에 관하여 특별한 조치를 할 수 있는데 헌법에 명시되어 있지는 않으나 이 모든 조치의 내용은 계엄선포의 원인이 된 사태를 극복하는 데 필요한 최소한에 그쳐야 한다.
3-1) 계엄사령관을 임명하고 계엄사령관이 행정과 사법업무를 관장한다. 계엄은 국회 기능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 국회의원의 불체포특권에도 전혀 영향을 주지 않는다는 것이 계엄법에 명시되어 있다. *입법부의 권한과 계엄은 아무 상관도 없다. 이번 포고령 제1호는 완전히 위헌적이다.
3-2) 기본권이 제한된다. 영장제도, 언론/출판/집회/결사의 자유, 거주이전의 자유, 단체행동에 특별한 조치가 가해질 수 있다. 영장제도에 가해지는 조치는 사후영장을 정당화 하는 정도까지는 가능할 것으로 보나 영장을 법관이 아닌 검사가 발부한다든지, 영장 없는 체포나 구속이 정당화된다든지 하는 것은 허용되지 않는다. 과거 군사독재 시절에 이런 식으로 발동된 긴급조치는 전후 뒤늦게라도 위헌으로 결정되었다. 아울러 언론/출판/집회/결사의 자유가 사전적 제한, 사후적 검열, 집회신고제를 넘어 사전검열, 집회허가제 등으로 제한될 수 있다고 본다. 그러나 과잉금지 원칙이 존중되어야 한다. *과도한 기본권 제한이 가해질 경우엔 계엄이 해제된 후에 다투어 재심을 청구하거나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도 있다. 가령 제4공화국 때의 수많은 긴급조치로 인해 전과를 가진 많은 사람이 재심으로 무죄 판결을 받은 경우들처럼.
4. 선포절차, 국회의 통제, 사법적 통제
4-1) 선포절차 : 대통령이 (1) 국무회의 심의를 거쳐 → (2) 국무총리와 관계국무위원이 부서하여 → (3) 대통령이 선포 시 이유/종류/시행일시/시행지역 및 계엄사령관을 공고 → (4) 선포한 때 지체 없이 국회에 통고 → (5) 사태 회복 시 국무회의 심의를 거쳐 계엄 해제 및 공고 *그래서 국무회의를 한 건지 안 한 건지, 했으면 회의록은 어디 있는지, 국회에 통고는 해제요구 결의안 가결될 때까지도 왜 안 한 건지, 해제요구 결의안 언제 통과됐는지 알았으면서 왜 바로 국무회의 소집해서 해제 및 공고 안 한 건지 다 해명해야 할 것이야.
4-2) 국회는 재적 과반의 찬성으로 해제를 요구할 수 있고 대통령은 국회가 해제를 요구한 경우 해제하여야 한다. 국회의 해제요구는 구속력이 있고 대통령이 응하지 않으면 탄핵사유가 된다.
4-3) 계엄선포는 고도의 정치행위이나 사법심사의 대상에서 제외되지 않는다. 한시적이지만 국가 기능에 중대한 변화를 초래하고 개인의 권리의무관계에 밀접한 영향, 그리고 기본권이 직접 침해되므로 법원은 계엄선포요건 구비 여부, 계엄선포의 당부를 심사할 수 있다. *사법심사의 대상이 아예 안 되는 것은 아니니 곧 법의 철퇴를 맞을 것이다.
0010이 무슨 통치행위가 어쩌고 고유의 권한이 어쩌고를 계속 주장한다면 속으로 이 내용을 떠올려주길 바라면서 정리해봤다. 이건 헌법학(그리고 행정학) 교과서에 나오는 기초적인 내용이라서 헌법재판관 같은 평생을 법조인으로 살아온 분들이라면 모를 수가 없고 내란죄로 심판해줄 형사법정의 판사님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요즈음 나도 그렇고 구치소에 있기 싫다고 헌재로 산책 나오고 싶어하는 0010 주정뱅이 때문에 스트레스 받으시는 분들이 많을 텐데 퀵 탄핵인용을 다시 한 번 기원하며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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