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이 블로그에서 수없이 언급한 헌법 제103조.
대체 저 양심이라는 게 뭘까? 맹자가 유가 사상에서 말하는 사람의 양심? 양심에 손을 얹고 말할 때의 그 양심?
헌법에서 법관에게 '양심'을 갖다붙인 건 제헌헌법부터가 아니다.
1962년 헌법부터 들어왔다. 제헌헌법의 제77조는 "법관은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독립하여 심판한다."이고 1962년 헌법 제98조가 현재와 동일한 "법관은 이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그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심판한다."이다. 실제로 제헌헌법의 기틀을 제공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 당대의 헌법학자 유진오도 양심 어쩌고를 특별히 거론하거나 교과서에 언급하거나 한 적이 없고 제헌헌법 시대의 헌법학 교과서 기록을 보면 일부 법관의 독립과 양심을 결부시키는 내용이 있기는 하다고 한다. 다시 말해서 국회나 행정부의 압력이나 간섭, 또는 소속 법원의 장이나 상급법원의 권위도 법관의 공정한 재판에 영향을 줄 수 없도록 법관이 오직 헌법과 법률에 따라 양심이 명하는 바대로 독자적인 판단을 내려야 한다는 의도로 '양심'이 나온다는 것이다. 하지만 어쨌든 제헌헌법에는 양심이 명시되지 않다가 1962년, 503 애비가 5·16 쿠데타 이후 주도한 내각제 폐지, 대통령제 개헌 때 이 양심이 들어왔다.
이러한 양심 운운이 일본 헌법의 영향이라는 시각이 있다. 다른 나라 헌법을 봤을 때 '양심'까지 거론하는 헌법은 거의 사례가 없는데 일본의 헌법 정도에나 제76조 "모든 재판관은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그 직권을 행사하고 헌법 및 법률에만 구속된다."라는 조문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일빠였던 503 애비를 생각해보면 충분히 궁예해볼 만하다고 생각은 들지만 딱히 근거는 없다.
어쨌든 이렇게 1962년 개헌 때 양심이 들어온 이후 1987년 개헌한 현행 제6공화국 헌법에서도 이 양심은 여전히 헌법에 자리잡고 있다. 이 양심에 대한 헌법학계의 해석은 대체로 개인의 주관적인, 양심의 자유로써 갖는 양심이 아니라 법관으로서의 객관적이고 법조적인 양심이라는 개념으로 해석한다. 그래서 원칙적으로는 법관 개인의 자아가 개입하지 않는 법률적 양심이라고 보는 견해가 지금까지 대체로 주류를 이루어 유사하게 이어지고 있다.
내가 배운 교과서인 전광석 교수님의 한국헌법론에서는 "이 헌법의 문구는 일본국 헌법의 해당 문구를 수용한 것으로 보인다. 일본국에서도 이때의 양심을 재판관으로서의 가져야 하는 직업상의 윤리감이라고 해석하면서 재판관의 개인적인 내심에서도 독립하여야 한다는 의미라고 본다. 이러한 것은 당연한 내용이므로, 이를 명시하지 않아도 무방하다. 오히려 제19조가 정하고 있는 양심의 자유에서 말하는 양심과 혼동을 가져올 수 있다."거나 "법관은 법적 기준에 따른 판단이 자신의 윤리적, 가치적 판단과 합치하지 않는 갈등의 상황에서 전자의 직분에 충실하여야 할 헌법적 의무가 있다. 사실 헌법 제103조가 제시하는 양심의 내용이 이와 같이 중요한 의미가 없기 때문에 양심을 재판기준으로 드는 것은 헌법정책적으로 보면 무의미하다."라며 차라리 조문에서 양심을 삭제하는 쪽이 낫다고까지 하고 있다. 그렇다는 것은 이 양심이라는 것이 사실상으로는 주관적 자아가 개입하지 않는, 객관적이고 법관이라는 직업적 양심이라고 보는 게 맞을 것이다.
다만 최근에는 양심이라는 것이 개인에게서 분리될 수 있는 것인가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에서 출발하는 해석도 점차 늘어나고는 있다. 그러나 사법부의 일원이 되어 판단을 내리는 것이 아니라 사법부의 판단을 받게 되는 처지에 평생 있을 나 같은 일반 시민은 살면서 재판이라는 것의 근처에도 가보지 않는 것이 가장 좋겠으나 사는 게 뜻대로 되는 것만은 아니니 판사의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그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판단'하는 판결을 받을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그런 나로서는 사법부에 내가 어떤 판사를 만나든 다 같은 결론에 이를 것이 자명한 확실한 법적 결론을 받고 싶지 판사마다 다 다른 양심의 결과를 랜덤으로 떠안기를 원치 않는다.
그렇다면 65세를 넘지 않은 비교적 젊은 나이+집시법 전과가 다수인 활동가 선생님들이나 노동운동가들, 양심적 병역거부자들, 초코파이 집어먹은 걸로 기소 당한 노동자들은 왜 판사의 안타까움의 대상이 되지 못 하는가? 어떤 내란범은 초범에 고령이라고 갸륵한 동정을 쳐받고 자빠졌는데.
법관의 양심이라는 건 진공 상태에서 법 조문만을 기계적으로 해석하는 것만도 아닐 것이다. 법률가적 양심이라는 것은 법관이 어떠한 권력의 간섭에서 벗어날 수 있는 독립성의 원천이면서 동시에 결국 사회와 유리되어서는 결코 안 될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렇다면 사법부의 판결에 시민의 감시가 드리워져야 맞지 않느냐 말이다. 애초 법 조문에는 문언 그대로의 뜻만 있는 것이 아니라 입법자의 의도도 담겨 있는 것이다. 사법부의 판결에 입법자의 의도가 잘 반영되어 있는지를 체계적으로 판단할 무언가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행정부가 입법자의 의도대로 법집행을 하는지는 국회가 감시할 수 있는 방도가 있는데 대체 사법부는 누가 어떻게 감시하고 견제하지? 구체적으로 이 문제를 논의해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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