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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정치의 끝에는 뭐가 있을까

트석열을 대통령으로 두 번 뽑는 나라가 있다.

 

출처 : https://www.bbc.com/korean/articles/cwy9k9zz807o

물론 거기에는 503을 뽑았다가 그 난리를 겪고도 또 윤새끼를 뽑았던 한국도 포함이 되는 문제지만 계엄이라는 초 거대 공화국 폭망 위기 일발 이벤트를 겪은 뒤에는 좀 판도가 바뀌지 않았나 싶기도 하다. 조금 더 지켜봐야겠지만.

탈정치를 고수하기 위하여 엄청 애쓰던 최근의 어떤 시위를 기억한다. 서이초등학교에서 선생님 한 분이 돌아가신 뒤에 순직 인정과 재수사를 요구하던 시위. 교사란 탈정치적이어야만 떳떳할 수 있다는 감각이었을까? 당사자가 아니어서 잘 모르겠다. 하지만 노동자로서 보기에 서이초 사건은 지극히 노동권의 문제였는데 노동자정치로 접근하지 않으면 대체 어떤 해법이 있다는 것일까? 순직 인정과 재수사는 온전히 행정의 작용이기만 할까? 그 행정의 주체도 역시 탈정치적인가? 어느 면으로 생각해보아도 탈정치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로 보이지는 않았다. 순직 인정은 되었다지만 재수사는?

결국 재수사 요구는 탈정치적 시위의 결과가 아니라 국회청원이 되어 행안위원회에 회부되었고 2025년 11월에야 상정되어 청원심사소위에 넘어가 있다. 이건 탈정치인가, 정치인가?

탈정치를 외치면 결국 우경화를 면치 못 한다. 우리는 이를 역사적으로 한 차례 검증하였다. 2000년대 초중반 대학가를 휩쓸던 비권 열풍이다. 비운동권 총학생회가 각 대학교에 우후죽순 들어섰고 20여 년이 흐른 지금 20대(특히 남성)는 현 70대와 맞먹는 수준의 우경화 경향을 보이고 있다. 미디어 환경은 도파민 분비를 유도하는 더욱 말초 자극적 컨텐츠로 인하여 더 악화되었고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은 이제서야 겨우 사회에 필요성을 설득시키고 있는 정도다. 교사 집단의 탈정치 추구의 결말은 지금의 썅대남과 다를 수 있을까? 상대적으로 작은 일부 집단에서가 아니라 시민 전체를 놓고 보아도 그 결말이 다를 수 있을까?

탈정치화의 큰 동력 중 하나는 누가 뭐래도 정치혐오라고 생각한다. 정치혐오는 왜 생기는가? 솔직히 정치는 나 같은 사람들한테나 재미있지 솔직히 노잼이다. 이걸 미디어가 잼컨인 것처럼 파는 방식은 스포츠처럼 중계하는 것이다. 승패와 상벌이 명확한 게임인 것처럼 해설하고 전달하기. 이걸 조금만 극우권력의 입맛에 맞게끔 조절하면 그런 모든 게임은 전부 나의 삶과 유리되어 있고 관여해봤자 아무 것도 달라지지 않는다는 무력감을 심는 데에도 아주 유용하다. 거기서 정치혐오가 시작된다. 그래서 정치고 뭐고 나는 신경쓰고 싶지도 않고 그러면 누구에게 유리해지는가? 그걸 멋대로 좌지우지하고 싶어하는 사람에게만 유리해진다. 

정파성을 띠는 것이 두려운가? 그렇다면 그걸 두렵게 만든 자들은 누구고 왜 그렇게 만들었는가? 현 기득권자들은 정파성을 띠지 않아서 기득권이 되었는가? 

정치가 노잼이어도 어쩔 수 없다. 원래 으른이란 재미 없어도 생계를 위해 일을 하고 재미 없고 고되더라도 집안일을 하며 생활을 영위한다. 정치 참여도 마찬가지다. 원래의 정치는 겁나 진지하고 설명이 개 많으며 고로 하나도 재미 있지 않다. 그것이 보통이다. 특히나 민주주의? 진짜 개갈 안 나고 시간이 많이 걸리고 깝깝하기 그지 없는 과정의 연속이다. 

그치만 어쩌겠나. 그게 이 사회에 같이 살아나가는 값에 포함되어 있다. 얼은이니까 감당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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