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도적으로 이 모든 말을 뒤섞어서 하는 놈들이 있어서 헌법이 뭐라고 하는지를 정리해 보려고 한다.
헌재결 2001. 3. 15. 선고 2001헌가1,2,3(병합) 결정례 중 일부 |
헌법 제101조 ① 사법권은 법관으로 구성된 법원에 속한다.
제103조 법관은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그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심판한다.
제106조 ① 법관은 탄핵 또는 금고 이상의 형의 선고에 의하지 아니하고는 파면되지 아니하며, 징계처분에 의하지 아니하고는 정직·감봉 기타 불리한 처분을 받지 아니한다.
사법부가 지켜야 할 가장 중요한 본질은 중립성과 공정성이라고 많은 법학개론서가 가르친다.
법원에서 하는 재판이라는 것은 말하자면 국가-시민 또는 시민-시민의 사이에 발생하는 다양한 법적 분쟁에 대하여 시민이 중립적이고 객관적인 제3자로서 공정한 최종판단을 해줄 것을 법원에 맡겨 개인의 권리를 구제하고 보호하는 국가권력작용이다. 그렇기 때문에 사법부의 중립성, 공정성이라는 것은 결국 구체적 법적 분쟁에서 개별 사실관계와 증거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또 해당 법적 분쟁의 당사자들에게서 독립적이어야 하며,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는 제3자의 지위에서, 공정하게 최종 판단을 내리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를 위해 필요한 것이 '사법권의 독립'이며 이는 위의 헌재 결정례에서 보듯이 입법-사법-행정 간 상호 견제와 균형을 이루게 하는 권력분립제도와 대립되는 개념이 아니다. 위 영상의 가인 김병로 선생이 런승만에게 했다는 말은 헌법이 보장하는 권력분립과 사법부 독립을 아우르는 한 마디라고 할 수 있다.
우리 헌법은 위의 각 조문에서 보듯이 사법권 독립에 관하여 크게 1) 사법부 조직의 독립, 2) 법관의 신분 보장, 3) 재판의 독립을 천명하고 있다. 이를 간단히 정리해보겠다. 정말 조희대요시가 독립독립 썁소리를 하는 취지처럼 국회에서 국회의원 질의도 씹고 판사들이 동행명령장을 씹는 그런 게 사법부의 독립인지 따져보자.
1) 사법부 조직의 독립
사법권은 법관으로 구성되는 법원에 속하며, 법원은 최고법원인 대법원과 각급법원으로 조직되는데 헌법은 이 법관의 자격과 법원의 조직을 법률로 정하도록 하고 있다. 사법부의 조직과 구성에 대한 주요 내용은 법원조직법에서 규정을 하고 있다. 헌법에서 규정한 군사법원 외에는 특별법원이 허용되지 않는다. (그래서 민주당이 내란특별어쩌고 하는 말에서 내란전담재판부로 용어를 바꾼 것.)
2) 법관의 신분 보장
법관은 외부의 어떠한 개입과 압력을 받지 않고 독립된 지위에서 공정한 재판을 수행하기 위해 헌법과 법률에서 정한 사유 이외에는 다른 어떠한 사유로도 불이익한 처분을 받지 않아야 하며 재판의 독립성과 공정성을 위해서 법관의 신분은 강하게 보장되어야 한다는 것이 우리 헌법과 법률이 법관의 신분을 보장하는 이유이다.
헌재결 1992. 11. 12. 선고 91헌가2 결정례 중 일부 |
3) 재판의 독립
사법권 독립의 핵심은 역시 여기에 있다. 법원 조직의 독립도, 법관의 신분보장도 결국은 법관의 재판 상 독립을 확보하기 위한 것이다. 헌법 제103조 "법관은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그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심판한다"고 한 것은 구체적으로 법관이 법원 내부 조직으로부터, 법원 외부 권력의 압박으로부터, 재판의 당사자로부터 독립해야 한다는 뜻이다. 또한 당연히 헌법은 모든 국가기관을 구속하므로 법관의 재판 역시도 헌법에 구속된다.
이상에서 보듯이 사법권의 독립과 법관의 독립과 사법부의 독립은 다 조금씩은 다른 뜻인 걸 알 수 있다. 그런데 그냥 다 섞어서 쓴다. 가장 잘 알 법한 인간들이 말이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우리 헌법이 기본적으로 가정하고 있는 사법부의 독립을 위협하는 요소는 내/외부의 권력관계나 부당한 압력이라는 것도 알 수 있다. 이는 군사독재를 겪은 우리의 현대사의 맥락에서 이해하여야 할 요소이다. 그러나 최근 문제시되는 건 법관이 재판상의 독립성을 마치 무기처럼 휘둘러서 법앞의 평등이라는 아주 기본적인 헌법적 가치를 해치거나 다수 시민의 공민권을 적극적으로 침해하려고 시도하는 행위들이다.
사법권의, 법관의, 사법부의 독립성을 왜 추구하는가? 독립성 그 자체가 목표라기보다도 독립성을 보장해야만 그것을 기초로 그 위에 중립성과 공정성을 확보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러한 독립성의 범위를 넘어서 재판이라는 국가권력작용에서 자의적인 법 해석으로 법적 안정성을 해치고 특정한 몇몇 사람을 위하여 전례가 없는 편향적 결정을 내리는 법관을 우리의 헌법은 어떻게 견제할 수 있는지를 진지하게 생각해야 하는 것이다.
더구나 국회의 국정감사에 증인으로 출석하라는 것은 사법권의 침해도, 법관의 신분 보장이나 독립성에 대한 침해도, 사법부 조직의 독립성에 대한 침해도 아니다. 대법관들이 보장된 독립성의 범위를 넘어서서 다수 시민의 공민권을 침해하려 한 법란(亂)이 일어난 것에 대하여 사실관계부터 가려보자는 것이다.
가인 김병로 선생의 예를 여기에 가져오는 것은 상황이 다르니 맞지 않을 수 있다. 당시 반런승만 파인 서민호 의원의 석방을 명한 안윤출 판사는 죽을 각오로 결의서에 도장을 찍었다고 할 정도로 독재정권이 서슬퍼렇던 시절이고 지금은 대법관들이 텔레파시로 전원합의체 회부하자는 논의를 하시어 공감대가 형성이 되시어서 사건이 접수되자마자 검사측도, 피고인측도 의견서를 안 낸 상태에서부터 7만 쪽을 축지(紙)법을 쓰시어 충분히 검토를 하셨다는 말씀을 받자와 거기에 의심이라도 가졌다가는 사법부의 독립을 흔드는 세력으로 몰아가는 시절이기 때문이다.
사법권의 위기는 대법관을, 술먹고 법정에서 난동을 부린 판사를 국회가 국감에 불러서 오라가라 해서 생기는 것이 아니고 사법권의 독립을, 법관의 독립을, 사법부 조직의 독립을 권력처럼 손에 쥐고 만용을 부리는 판사들 자신이 초래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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