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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회주의자라는 사람들의 일면

많은 사람이 2014년 4월 16일 오전에 자신이 어디에서 무엇을 했는지 꽤 명확하게 기억한다고 말하는 것을 들었다. 그리고 나도 그렇고. 


나는 민정당 의원실에서 세 번째로 불가촉천민 신분의 일을 하다가 2014년 7월에 해고되었다. 그래서 그 날 아침에는 다른 날과 마찬가지로 당시 영감쟁이의 아침 8시 전부터 본청 수행을 하고 회관으로 복귀를 했었다. 의원실마다 다르기는 하지만 많은 의원실이 뉴스채널을 그냥 계속 켜놓곤 한다. 당시 내가 일하던 방은 그렇지는 않았는데 아무래도 엄청난 뉴스가 터지니 내 옆자리 비서 언니가 속보 뉴스를 틀어놓아서 귀로 계속 듣다가 또 뉴스를 보러 갔다가 왔다갔다 하는 아침이었다. 

오보가 났을 때, 이웃한 의원실 어디선가에서는 '만세' 같은 소리도 들렸었다. 다들 같은 마음으로 간절히 기원하고 있다는 그런 기운을 느낄 수 있었다. 아주 인간적인 어떤 순간이었다. 그리고 이내 오보임이 알려졌고 그 뒤로는 복도가 조용해졌다. 다들 방안에서 뉴스를 보며, 속보를 새로고침하며 작게 '어떡해.'만 반복하는 상황이었다. 

그리고 사실, 내가 일하던 의원실은 안산에서 그리 멀지 않은 지역이었다. 지역구 오가는 길 근처에 안산이 있었다. 그래서 그 지역의 침통했던 분위기 같은 것을 바로바로 전해들을 수 있었다. 분명히 한동안 모두가 애도를 했었다. 지역보좌관 분이 분위기를 직접 전해주기도 했다. 동네 전체가 초상집 같다고. 그래서 4월 16일 이후 구조와 수색을 이어나가던 얼마간의 기간에 국회 전체가 슬픔의 안개 속에 쌓인 것 같았다.

그런데 시간이 좀 지나자 민정당내 분위기가 노골적으로 바뀌었다. 다들 기억하다시피 정말 입에 담지 못할 말들로 그저 실종자 수색과 왜 침몰했는지, 왜 구조하지 못 했는지 진상규명을 원하는 당연한 피해자와 희생자 유가족의 요구를 폄훼하고 몰아가기 시작했다. 단식을 하고 전국을 삼보일배를 해도 503은 유가족을 만나주지도 않았고 왜 그렇게 구조를 하지 않았는지 그 진실은 아직도 저 차가운 바닷속에 잠들어 있다. 

민정당의 주요인사들이 그런 기회주의자 파쇼로서 행동하는 것은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니었다. 민정당에서 일할 때 자주 보던 것들이었으니까 물론 그렇다고 해도 정말 경멸스러웠다. 그런데 나를 더 놀래킨 것은 예상가능한 사람들의 예상가능한 악행이 아니라 처음에는 지역의 분위기를 전하며 마음 아파했던 그 방 보좌관 같은 사람들이 점점 불쌍히 여기기라도 하던 시선을 거두고 저 파렴치하고 안면몰수의, 반인륜적 패륜행위에 동조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그 동네에 어느 지역 출신들이 많이 산다는 말까지 덧붙여 가며. 

최근 준동하는 극우세력은 유럽에서 처음 정의내린 파시스트와도 성격이 좀 다르다. 이 사람들은 그렇게 엄청나게 철저히 국가주의에 부역하지도 않으며 그렇게 의리 있게 파시즘을 표방하지도 않는다. 그때그때 파시즘이 유용해서 항상 사용할 뿐이다. 정말 중요한 이 사람들의 정체성은 '기회주의자'라는 것이다. 

누누이 이야기해왔지만 '기회주의자에게는 존엄이 없다.' 기회주의자들에게 '보수'는 너무 고상하고 예쁜 이름이다. 이 자들은 보수주의자가 아니다. 자기들이 명예를 중시한다고 본인 입으로는 떠들 수는 있다. 하지만 결코 그렇지 않다. 사회에서 겉으로 보이는 지위를 중시한다는 뜻으로 명예를 사용한다면 일부 맞는 말이겠으나 양심에서 우러나오는 명예 같은 것을 지니지 못 했다. 애초 그런 것을 알지도, 이해하지도 못 한다. 머리의 좋고나쁨이라든가 지식의 많고적음도 상관이 없다. 머리가 좋으면 좋은 머리로 자신의 이익 추구와 양심적 불명예 상황을 궤변으로 마치 정상적인 것처럼 포장하는 재주에나 쓰일 뿐이고 반대의 경우에는 이것저것 직접 판단하지 않고 자동적 사고를 하기 더 용이할 뿐이다. 이 사람들도 도덕적인, 인간적인 존엄을 갖지 못 하는 기회주의자인 점에서 동일하다. 재산의 많고적음도 마찬가지다. 기회주의로 이미 돈과 돈 벌 기회를 이미 얻었는가, 장래 얻고 싶은가의 차이뿐이다. 

이 일을 계기로 나는 기회주의자라는 사람들의 일면에 더욱 더 학을 떼게 되었다. 내가 아무리 직업 보좌진이 되고 싶어도, 짤린 시점에 더 될 수도 없어졌지만, 그리고 민주당이나 소수정당 의원실들 모두 내게 기회를 주지 않았기 때문에 그쪽으로 갈 수 있는 미래도 기대하기 어려웠고. 그런 상황에서 저 기회주의자들 밑에서 불가촉천민으로 복무하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 현타도 왔다. 잃을 존엄이 없기에 수치심도 없는 사람들, 그리고 그런 사람이 돈을 많이 벌고 출세하는 것으로 보이니까 그것이 그래도 되는 것인 줄로 간주하여 믿고 추종하는 사람들이 다 기회주의자고 사회를 망쳐왔다. 이 때의 경험으로 나는 이번 내란 전까지는 내가 저 자들에 대해 좀 안다고 생각을 했다. 그런데 이번 내란을 겪으려니까 내가 오만했다는 걸 알게 됐다. 내가 알던 것보다 더 끝까지 갈 수 있는 사람들이었다. 

부디 이번 내란이 종식되고 저 기회주의자들의 윗대가리들이 철저하게 철퇴를 맞는 결과가 나오기를 간절히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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