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행 국회법 상 교섭단체 구성요건은 '20명 이상'이다. 교섭단체가 뭔지 모르겠다면 이 포스팅을 먼저 읽고 오길.
'교섭단체 구성요건 20인'은 언제 정해진 걸까?
SNS에서 종종 보는 짤방 중에 이런 게 있다.
최근에 태어나신 분들에게는 맞는 경우가 꽤 있겠지만 사실 나는 716보다 더 만악의 근원은 503 애비라고 보는 편이다. 호남혐오와 (여의도)정치혐오를 인셉션한 503 애비의 죄는 21세기에 와서도 극악하다고 할 만하다. 503 애비는 유신을 할 정도로 국회를 무력화하고 싶어서 갖은 술수를 썼는데 교섭단체 구성요건 20명도 4·19 이후에 제2공화국이 출범하면서 참의원(상원)이 10명, 민의원(하원) 20명이던 것을 5·16 군사정변 이후 제3공화국이 대통령중심제+단원제로 개헌하면서 10명으로 개정했던 것인데 유신을 하면서 다시 20명으로 늘린 것이 현재까지 오는 것이다.
제1공화국 1949년 7월 개정 국회법 |
4·19 이후 제2공화국(내각제/양원제) 1960년 9월 개정 국회법 |
5·16 군사정변 이후 제3공화국(대통령제/단원제) 1963년 11월 개정 국회법 |
유신 이후 제4공화국 1973년 2월 개정 국회법 |
제헌의회와 제5대 국회 때까지는 20일이었는데 비율로 따지자면 그때가 더 상황이 안 좋았지만 당시에는 지금과 같은 상임위중심주의가 아니었다. 본회의를 중심으로 국회가 운영되었기 때문에 정당 간 협의/합의가 중시되었다. 그러던 것을 4·19 혁명 후에는 내각제/양원제인 제2공화국이 출범하면서 제1차 개헌 이후 명목상으로만 존재하던 양원제의 참의원 선거를 처음 실시해서 참의원 58명, 민의원 233명을 선출하였다. 이때까지도 아직 본회의 중심으로 국회가 운영되어 교섭단체가 그리 중요한 역할을 하지 않았다. 그리고 제2공화국 자체가 채 1년을 존속하지 못 했고.
그러던 것을 5·16 이후 국회의원 정수를 175명으로 확 줄이고 국회에 상임위중심주의가 들어오게 되면서 교섭단체 구성요건을 10명으로 완화했다. 그러던 것을 유신 이후에 20명으로 올린 것(제안자가 대통령이다, 무려)은 당시 여당이었던 박정희의 공화당이 정국 주도권을 쉽게 가져가려는 의도였다. 유신 이후 국회 정수는 219석이었는데 이중 73석은 유정회가, 146석은 전국 73개 선거구에서 각 2명씩 선출하는 중선거구제를 통해 선출하도록 했다. 이런 환경에서 상임위중심주의가 들여오고 교섭단체 구성요건을 저렇게 만들고 국정감사도 못 하게 하고 국회를 연 150일 이상은 열지도 못 하게 했다. 그게 유신헌법이다. 그 잔재가 현재까지 오고 있는 것이다.
교섭단체 구성요건 20명은 재적 300명 중 약 6.7%다. 해외의 경우를 볼까? 독일은 교섭단체 의회라고도 부르는데 전체 의석의 5%로 규정하고 있고 프랑스는 15석(재적의 2.6%) 일본 의회의 회파 구성요건은 2석이면 된다. 단원제 국가 기준 비율로 따졌을 때 한국보다 구성요건의 비율이 빡센 나라는 IPU 회원국 중 룩셈부르크 하나뿐이다. 약 8.3%(60석 중 5석). 룩셈부르크 자체가 워낙 작은 나라임을 감안하면 사실상 한국이 원탑이다.
우리도 바꿀 때가 됐다. 현재 개정안이 국회 계류 중이다.
우선 조국혁신당의 정춘생 의원안. 10인 이상으로 개정한다는 내용이다.
다음은 박홍근 의원안. 15석 이상. 이렇게 되면 비율상 5%다.
그리고 민형배 의원안. 구성요건 10명으로 개정하는 내용이다. 정춘생 의원안과의 차이점은 위원회에 비교섭단체 정당이 둘 이상인 경우 그 대표로 간사 1명을 두는 내용도 추가되어 있다.
그리고 국회청원으로도 교섭단체 구성요건을 10명으로 하는 청원이 동의수를 6만 이상 얻어 운영위에 회부되어 있다.
이번 대선에서 조국혁신당이 후보를 내지 않고 기여한 부분이 있는 만큼 민주당으로서도 국회법의 이 조항을 개정해서 빚을 좀 털고 가는 것도 손해가 날 상황은 아닐 것이다. 소수정당에게도 좀더 국회운영에 참여할 수 있는 의회 운영 상의 민주주의가 더 확립되는 것은 물론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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