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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장님으로서의 국회의원 - 블랙기업인 경우

자주 하는 말인데 국회의원이 300명이면 의원실이 300개라는 이야기고 그 각각이 소기업 같아서 국회의원회관이란 소기업 300개가 모인 곳이라고 할 수 있다.  

국회의원회관

국회의원실에는 직원이 통상 9명씩 있고 여기에 지역사무실 보좌진이 추가되기도 하지만 그래봤자 10~12명 정도다. 진짜 딱, 소기업이다.

'국회의원실에서 일하는 거 어때?' 하고 물으면 일반화해서 말하기가 어렵다. 사기업의 경우에도 같은 업종인 회사라고 해도 회사마다 사장이 다르고 직원이 다 달라서 사풍이 다르듯이 의원실도 의원실마다 운영하는 방식이 다 달라서 예전에 했던 포스팅에 나온 것처럼 기기괴괴한 썰이 있는가 하면 모두가 수근수근하며 부러워 하는 의원실도 있고 천차만별이다. 아무래도 소기업은 사장이 회사를 좌우하는 면이 큰 바, 의원실이라는 소기업의 사장인 국회의원 중 보좌진의 시각에서 영 파이는 사장님 유형을 몇 가지 꼽아보겠다. 

미리 말하건대, 이것은 그 정치인이 어떤 정치인인가와는 사뭇 다른 관점일 수 있다. 


1) 고용 불안정 유형

- 유난히 보좌진을 자주 갈아치우는 영감들이 있다. 

- 상임위가 바뀌면 전문분야의 보좌진으로 교체할 수 있는 거 아니냐? 맞다. 그렇게 하기도 한다. 가령 영감 자체가 직능대표였다든지 진짜 특별한 전문분야가 있어서 정계에 입문했는데 의정생활을 오래하고 지역구도 챙기다보면 한 분야의 상임위만 고집할 수가 없게 된다. 그럼 문외한인 분야의 상임위로 가야 할 때도 있는데 그래도 보좌진의 도움을 받아서 훌륭히 일을 해내야만 한다. 보좌진이 그걸 되게 하는 사람들이다.

- 그런데 또 보좌진이라는 역할은 묘한 데가 있어서 전문분야에서 섭외하는 게 좋은 경우도 있지만 원래 그 의원을 보좌하던 팀에서 새로운 상임위에 대해서 업무를 파악하고 정보를 습득해서 일을 하는 것이 나은 경우가 대부분이다. 왜냐하면 부처별 특성이 있는 것은 맞지만 공무원이 일하는 방식은 관료제 체계 안에서 크게 다르지 않은 것도 사실이기 때문이다.

- 어쨌거나 보좌진 처지에서 영감이 계속 재선한다는 가정 하에 2년마다 상임위가 바뀔 텐데 그때마다 짤릴 위기에 처한다면? 별정직 공무원이 암만 허울 좋은 비정규직이라지만 너무 불안정하다. 선호되는 타입이라고는 할 수 없다.


2) 패밀리 비즈니스 유형

- 의정활동에 가족이 너무 많이 개입하는 유형이다.

- 특히 배우자. 가장 훌륭한 배우자는 있는 듯 없는 듯 존재하지만 백업만 해주는 사람이다. 가령 영감이 바쁠 때 지역구 경조사 대신 가주는 일+재산신고 때 잘 협조하는 배우자라면 더할 나위 없이 최고다. 반면에 의원실에 뭔가 할 일을 던져주는 배우자? 진짜 노땡큐다. 

- 배우자뿐 아니고 개입하는 가족은 다양하다. 형제자매, 자녀, 조카, 직계존속, 처남 등. 물론 진짜 물심양면 도와만 주는 최상의 가족이 존재하지 않는 건 아니다. 하지만 그 조건을 만족하기란 정말 너무 어렵다.

- 의원실 일에, 의정활동에 가족이 감놔라 배놔라 하면 보좌진은 괴로워진다. 괴로워질 수밖에 없다. 의원실은 어찌 됐든 사장님인 의원 한 명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조직이다. 근데 하늘의 해가 둘이 되면 스텝이 다 꼬이게 된다. 고려할 것이 두 배, 세 배로 늘고 골치가 아파진다.

- 지금은 사라졌지만 이제 보좌진으로 친인척 채용까지 하게 되면 공식적으로 영감이 한 명 더 생기는 셈이다.


3) 난 짜장면 유형

- 마음껏 먹고 싶은 거 다 시켜! 난 짜장면! 국회의원 중에도 있냐고? 당연히. 단지 회식 이런 것뿐만이 아니고 복리후생 전반적으로 적용되는 이야기다.

- 의원실이라는 소기업은 업계 특성상 월화수목금금금이 잦다. 주말노동을 돌아가면서 하는 의원실도 있고 지역구 사무실 직원들과 바톤터치하는 곳도 있고 뭐 하여튼 보좌진이 시간 쓰는 게 정말 어렵다. 연차를 신청해서 결재 받아 쉬고 그런 것도 아니기 때문에 경조사라든가, 집안의 대소사(이사 같은), 여름휴가, 병원 진료, 공공기관과 처리해야 할 일 등 사기업이라면 연차를 써야 하는 경우에 그냥 이러저러한 사유로 쉬겠습니다, 해서 쉬어야 하는 경우가 거의 대부분이다.

- 통상 이런 보고는 선임 보좌관에게 하고 의원에게도 보고하고 다같이 일정공유하고 그렇게 한다. 위에서 말했듯 평소 휴가 사용이 어렵기 때문에 여름휴가 같은 경우는 통 크게 쉴 수 있도록 해주는 경우도 심심찮게 있다. 보좌관에게 지시해서 언제부터 언제 사이 기간에 돌아가면서 한 주씩, 열흘씩, 두 주 통으로 쉬라고 한다든지 그러는 좋은 의원실이 있다고 들었다. (나는 경험 못 해봤지만 이제 여기에 금상첨화가 되려면 봉투 주면서 휴가비도 좀 나눠주라고 한다는데 이런 건 진짜 영감이 돈이 많은 의원실이나 그렇게 한다고 들었다.)

- 근데 꼭 이런 거에 인색하게 구는 영감들이 있다. 통상적인 휴가기간은 다가오는데 아무 말이 없음. 본인도 언제 휴가갈 거라고 알려주지도 않음. 은근히 '올해는 그냥 휴가 패스하고 지역구에서 뫄뫄나 할까봐' 이딴 소리 함. 이러면 이제 골치가 아파지는 거다. 고양이 목에 방울 다는 심정으로 이제 누군가 보좌진의 휴가에 대해서 물어봐야 하는 거다. 물론 주로 보좌관이 하게 되긴 하겠지만 아무튼 이런 얘기 아랫사람들이 꺼내기 애매하게 만드는 저 '난 짜장면' 유형이 존재한다. 

- 의원실 회식이나 거창한 회식이 아닌 그냥 다같이 밥 먹는 일도 늘 진수성찬을 원하는 게 아니다. 그냥 일도 힘든데 밥이나 잘 먹자는 거지. 근데 꼭 '대충 때우자' 요딴 소리를 하는 영감들이 있다. 영감이 방에서 대충 때우는데 보좌진이 '나는 홀로 의원실 밖에 나가 밥을 먹겠소' 할 수 있을 리가. 진짜 이런 리터럴리 '난 짜장면' 시추에이션도 꽤 있다. 


4) 의전 중독 유형

- 통과의례처럼 초선들은 2년차쯤에 이런 중독 증상을 겪는 것 같다. 중독이라는 표현이 질병에 대한 편견 문제로 정치적으로 올바르지 않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지만 이 경우에는 중독이 맞는 것 같다. 물론 유니콘처럼 안 그런 영감도 존재한다. 가끔. 아주 가끔. 

- 하지만 그렇게 되기가 너무 쉽다. 보좌진이 정말 많은 일을 대신 해준다. 왜냐면 영감은 생각을 하고 방향을 정해서 그 방향에 맞게 보좌진이 이것저것을 준비해주면 그걸 가지고 퍼포먼스를 선보이고 그 결과를 가지고 또 피드백을 하는 그런 플레이어이기 때문에 보좌진은 퍼포먼스를 최대한 다 준비해준다. 자질구레한 것까지.

- 그러다보니까 의전 중독이라고 해서 막 예전에 서울역 플랫폼까지 차를 몰고 들어갔다는 그런 정도라거나 단순히 막 각잡힌 의전에 집착을 한다기보다도 뭐든지 세팅되어 있지 않으면 안 하려고 하는 영감들이 있다. 의상(재킷, 넥타이, 신발, 뺏지, 필요한 경우 간단한 헤메까지), 차량 대기, 일정 정보, 수행비서의 온갖 자질구레한 수행(짐, 가방, 우산 들어주기, 도시락이나 음료 챙기기, 행선지 관련 정보, 축사 준비 등)까지 뭐 다 세팅되어 있지 않으면 싫어하고 짜증내고 화를 내기도 한다. 한반지를 운반하다 돌아버린 프로도처럼.

- 그리고 이런 유형들이 보통 시간약속을 뭣같이 알아서 보좌진 애를 태우는 경우가 정말 많다. 행선지에 예약이 되어 있다든지 행사 시간이 정해져 있다든지 하면 진짜 발을 동동거리며 예약시간을 백 번 바꾸는 비자발적 진상이 되어야 한다. 기차시간, 비행기시간도 오백 번씩 바꾼다. 


5) '제발 부탁인데 써준 거라도 좀 잘 읽어주면 안 될까?' 유형

- 보좌진은 영감이 프리스타일도 잘 할 수 있게 준비시키는 걸 좀 내적으로 뿌듯하게 생각한다.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도 뭐라도 멀쩡한 듯이 말할 수 있게 만들기 위해 보좌진이 존재하는 것이기도 하고 사전에 시나리오가 정해진 대로 굴러갈 때 잘 하는 건 사실 기본적인 거라고도 볼 수 있으니까. 

-  정치인이 구설에 오르는 경우는 이런 강제적 프리스타일 상황에서 정제되지 않은 언어가 확산될 때인 경우가 많다. 이런 경우에 사고가 자주 난다. 그렇게 몇 번 프리스타일하다 까이면 의기소침해져서 '세팅되어 있지 않으면 나 안해' 모드가 되는 영감들이 있다. 가기 싫어하고 인터뷰, 질의문답, 이런 것도 돌발질문 나올까봐 피하는 거다. 

- 하지만 세상일이 어디 그렇게 뜻대로만 되겠는가. 그리고 언론에 나는 걸 싫어할 영감도 없다. 그러니 결국은 전혀 아무 세팅이 되지 않은 곳에 가서도 영감이 자기 개인기로 커버하고 극복하고 돌파하는 실력이 필요하다. 그러려면 평소에 보좌진이 떠먹여줄 때 정신 똑바로 차리고 받아먹고 꼭꼭 씹어서 자기 것으로 만들어두었다가 필요할 때 꺼내 써야 하는데 이게 말처럼 간단한 것만은 아니다. 

- 근데 그걸 할 수 있냐 없냐 따지는 것 정도도 이상적인 얘기고 제발 써준 대로만이라도 잘 해주기를 바라야 하는 영감들도 심심찮게 존재한다. 국정감사도 그렇고 평소 상임위 때도 그렇고 보좌진이 열심히 질의서를 써주지만 제대로 읽는 것도 못 해서 보좌진 속을 터지게 하는 영감쟁이들이 있다. 내용을 잘 몰라도 그럴 듯하게 아는 것처럼 잘 읽는 것도 진짜 훌륭한 개인기다. 그게 안 되는 바보들이 진짜 많다.


개인적으로 최악이라고 생각하는 건 내가 많이 당해봐서 2)번 유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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