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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경원 롤'이 뭐냐면

이런 수제 포스트를 쓴 적이 있다.

지금이야 극우의 아이콘처럼, 약간 '저 사람 왜 저래...' 같은 사람이 됐지만 '나경원 롤'이라고 하면 단순히 그런 뜻은 아니다. 거칠게 요약하자면 그때그때 줄을 잘 갈아타면서 겉으로 드러나는 일 위주로 이것저것 시도하지만 실제로 알짜배기 요직에는 가지 못 하고 서서히 이미지만 소모하다가 추하게 사라지는 그런 건데...

나경원은 원래 판사 출신으로 이회창 씨의 권유로 2002년 대선 때 정계에 입문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다 이회창 낙선 후 잠깐 변호사 하는 척을 하다가 제17대 총선에 비례대표 11번으로 국회에 들어가게 된다. 

사실 17대 국회는 소위 '탄돌이, 탄순이'가 대거 국회에 입성한 때로 열린우리당 초선들의 바람이 거셌다. 당시 민정당 이름인 한나라당에서는 386에 대응해서 이회창이 불러 모았던 젊은 보수층 인사들 중 좀 유명했던 남원정 3인방이 그에 대응하는 '새정치 수요모임' 같은 것을 만들어서 개혁적인 느낌을 주는 활동을 하는 유행이 있었는데 나경원은 또 이쪽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았다. 본인이 공천심사위원이다가 비례번호를 받아서 그랬던 걸까? 어쨌든 그런 개혁세력과 함께 목소리를 내기보다는 당 대변인 하면서 기자들하고 친분 쌓고 이미지 관리하는 쪽이 더 적성에 맞았던 듯 싶다. 실제로 기자들하고도 항상 관계가 좋았던 걸로 기억한다. 뒤로 갈수록 716을 위한 어록을 많이 남겼다. 이때 가장 시전했 게 그 유명한 '주어는 없었다'였다.

그 뒤로는 서울 중구 지역구를 받아서 18대에 당선이 되었다. 재선에, 서울 출신이기도 하고 서울에 지역구를 잡았고 기자들한테 자기 인기 좋고 대변인 하면서 본인 생각에는 이미지 딱히 나쁜 거 없고 당시 716 정권과의 관계가 좋아서(최시중-이동관, 국정원 간부와 함께 회동한 게 기사로 날 정도였다.) 5회 지선 서울시장 자리를 탐내기 시작했다. 경선에 분위기 나쁘지 않았다고 하는데 당시 경쟁자는 무상급식 이전의 정수기 변호사. 경선에서 깨졌다. 그 뒤 무상급식 캐삭빵에서 정수기가 나가 떨어지고 누가 봐도 민주당에게 유리한 보궐선거 판이 벌어지고 나서야 그 자리에 출마할 수 있게 됐다. 아무도 그 자리에 갈 마음이 없을 때에야 비로소. 근데 이러고 19대 총선을 불출마 하면서 살짝 멋이 있을 뻔 했는데...

그렇게 진짜 사라졌음 좋았을 것을 6회 지선 때 몽즙 씨가 지역구를 비운 동작 을 보궐선거로 국회에 컴백한다. 강남4구에 동작이 들어가자, 뭐 이러면서. 이때 3선이라고 국회 외통위원장이 됐는데 첫 여성 외통위원장인 점을 굉장히 잘 팔아먹었다. 왜냐하면 외통위는 지역구에 뭐 팔아먹을 게  별로 없는 레알 노 알짜, 노 콩고물 상임위이기 때문이다. 보궐3선이지만 보스가 필요한 사람. 친이를 열심히 했던 거 같으면서도 또 알짜배기로 뽑아 먹은 것도 없던 실속 없는 무계파 생활... 그러나 친이도 꽤 열심히 하려고 했던 과거가 있다보니 새누리당 소속이라고 갑자기 열렬한 친박이 될 수는 없어서 살짝 탈박한 김무성 보스의 밑으로 들어간다.

(당시에는 꽤 유명한 짤이었다.)

그러니까 이게 묘한 거다. 분명 어느 때나 이기는 쪽에 줄을 대려고 했고 꽤 열심이었고 한데 딱히 정확이 어느 계파 소속은 못 된다. 가령, 일찍이 친이라 하면 이재오, 진수희 등을 꼽는데 둘다 나중에는 처참히 날아갔어도 장관도 하고 콩고물을 나눠 먹는 패밀리였다. 친박도 조윤선처럼 청와대 들어가서 콩고물 좋은 거 같이 빼먹고 고초 당할 땐 또 같이 잡혀 들어가는 계열도 아니며 이혜훈처럼 열심히 친발 하다가 드라마틱하게 탈박으로 전환한다든지 그런 것도 없었다. 계파에 못 끼니 이리저리 화도 피하지만 영광의 시간도 없는 것이다. 

여튼 김무성이 옥새파동을 일으키며 흐려지긴 했어도 나경원은 20대에도 동작 을에서 4선에 성공하긴 한다. 그래서 꿈을 꾸기 시작한다. 중진이라면 한 번쯤 꿈꿔보는 그 자리. 원내대표. 사실 나경원은 전당대회를 몇 번 나갔었다. 다만 최고위원에 두 번 정도 당선했는데 그때마다 당이 선거에서 대 참패하는 타이밍이라 임기를 채운 적이 없을 뿐. 당 대표를 할 만한 세력이 없는 건 자신도 잘 알 것이고 그렇다면 가장 탐나는 뽀다구 나는, 실질 권한도 큰 알짜배기 당직이 원내대표다. 근데 20대 국회 들어서 나경원은 무려 원내대표 선거를 두 번이나 졌다. 처음엔 정진석에게, 탄핵정국에 다시 치른 선거에서는 정우택에게 졌다. 

그러다 무려 새누리당이 쳐망해서 자유한국당이라는 이름을 갖게 되어서야 치른 선거에서 3수만에 김학용을 꺾고 원내대표가 된다. 근데 솔직히 망한 당의 원내대표라는 거 누가 기억하나. 나경원이 1년이나 원내대표였던 거 기억하는 사람? 그래서 그런지 21대 총선은 졌다. 

그렇게 존버하다 22대 총선에서 류삼영 전 총경을 이기고 동작의 며느리(...)로 귀환했다. 이제는 무려 5선. 5선인데 자기 계파도 없는 중량감 0의 다선. 그것도 당선이 됐다 안 됐다 하는 불안정한 수도권 지역구... 줄을 탈 자기보다 더 선수 높은 뺏지도 없다. 이제 그의 선택은 무엇? 친윤을 추구하지만 역시 이번에도 핵도 찐도 못 된다. 그냥 아스팔트 극우들보다 대우가 약간 나은 정도. 이미지 다 구겨도 콩고물 떨어지는 것도 없다. 어쩌면 다 상관 없을지 모른다. 이 양반은 정치권에서 뭘 하려는 목적이 없고 그냥 자기가 주목 받는 정치인이기만 하면 행복한 듯 하다. 권력을 누리는 기분을 느끼는 것. 

여기까지는 관찰자의 시각에서 본 것이라면 이런 나경원을 항상 어떤 역할에든 가져다 썼던 사람들의 시각에서도 한 번 보자. 이런 사람이 있다면? 뭐든 다 드러나 보이는 일에 고맙다면서 늘 동원하고 결정적으로 내 이너서클에 넣어주지는 않아도 되는 사람. 내 진짜 권력을, 알짜배기 콩고물을 나눠 줄 필요는 없는 사람. 그게 '나경원 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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