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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 정치인의 범주

내가 몹시 좋아하'던' 작가 밀란 쿤데라는 소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에서 사람을 네 범주로 나누어 설명했다.  이 네 가지 범주 중 첫 번째 범주의 대표적 예시로 나오는 것이 바로 정치인과 연예인이다.  옆에서 많이 보면서도 국회의원, 또는 국회의원이 되고 싶어하는 사람, 지방자치단체장, 지방자치단체장이 되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갖는 '내가 알지 못 하는 모든 사람들에게도 관심 받고 싶다!'는 욕구는 참 신기하기만 했다. 심지어 항의(라고 쓰고 욕설이라고 읽는) 전화가 사무실로 빗발치는 상황이 와도 전화 받는 직원들이나 괴롭지 영감 본인은 딱히 괴로울 일은 없고 오히려 부정적 관심이라도 쏟아진다는 사실 자체는 좀 즐긴다는 느낌이었다. 직원들한테는 미안한 척 '좀만 참아라' 할 뿐. 내 경우에는 사람들 관심을 받는 게 괴롭지는 않지만 내가 원하는 사람들의 관심만을 원하고 불특정다수의 관심까진 바라지 않는다. 그리고 관심을 받더라도 그 관심의 대상이 내가 만든 것, 내가 쓴 글, 내가 한 일이기를 바라지 나라는 사람이기를 바라지는 않는다. 그런 성향이 보좌진이라는 직업을 선망한 이유이기도 하지만 그래서 항상 정치인이 신기했다. 욕일지언정 누가 말 걸어주면 그걸 좋아하고 내 뒤에서 나를 욕하는 걸 알아도 당장 악수하고 미소 짓는다. 누가 날 싫어하면 그냥 대충 포기하고 '아이고 그건 네 사정이십니다' 하는 나와는 태생이 디자인이 다르다고 느꼈다.  역으로 저런 종류의 타고난 관종력이 없으면 훌훌 털고 정계 은퇴를 해버리기도 어렵지 않은 듯하다. 아무리 남들이 보기에 뭔가 대단한 권력이 있어 보여도(내 생각에 공적으로는 권력이 좀 너무 적다고 보지만) 견딜 수 없는 무게의 관심과 기대가 있기 때문에 그만큼 부담을 느끼는 것이 괴롭기도 한 것이다.  (참고로 다른 세 범주를 좀더 설명해보면, 두 번째 범주는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인싸 친구들에 가깝다. 인싸의 욕구가 연예인 수준까진 아...

국회에서 쓰는 어휘집 - 안건, 의안, 사건 - (ft.비상계엄해제요구 결의안)

국회의 의안에 대하여 말하고 싶기는 한데 사실 굉장히 방대한 분량이 될까 두려워 쉽사리 시작을 하지 못 하고 있었다. 하지만 시작해야 할 것 같아서 최대한 짧고 쉽게 써보려고 한다.  안건, 의안, 사건 내란의 밤에 우원식 의장이 빨리 의결하자는 국회의원들의 요구를 자제시키며 "안건이 아직 안 올라왔어요."라고 타이르는 영상을 많이 보았을 거라 생각한다. 안건이 아직 올라오지 않았다는 말은 무슨 뜻일까? 우선 안건. 안건은 의안과 사건을 합친 말이다. 일단 아래는 최근에 열린 본회의의 의사일정 공지 2건이다. 2024년 12월 31일 제420회 국회(임시회) 제3차 본회의 의사일정 공지 중 일부 2025년 1월 8일 제420회 국회(임시회) 제4차 본회의 의사일정 공지 중 일부 12/31 의 부의안건은 다 '~안'으로 끝나는 걸 볼 수 있고  1/8 본회의 부의안건의 1번부터 8번까지는 전부 어떤 잡놈이 권한대행 주제에 거부권을 행사한 법안들에 대한 '~ 재의의 건'으로 끝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간단히 보면 위는 의안, 아래는 사건이라고 하겠다. 둘의 차이는 뭘까? 국회에서 처리되는 법률안이나 탄핵소추안이나 예산안이나 결의안이나 파병동의안 같은 것들은 다 '의안' 형태로 유통된다. 의안이 무엇인지 의안정보시스템의 설명을 잠시 빌려와보겠다.  국회는 법률안·예산안·동의안 등의 심의를 통하여 헌법이 요구하는 국회의 기능을 수행하고 국민의 의사를 국정에 반영하게 된다. 이와 같이 국회에서 심의하는 법률안·예산안·동의안 등과 같은 안건을 의안이라고 부른다. 일반적으로 국회에서 통용되고 있는 의안의 개념은 헌법, 「국회법」, 그 밖의 법률에 따라 국회의 의결을 필요로 하는 안건 중에서 특별한 형식적·절차적 요건을 갖추어 국회에 제출된 것을 말한다. 의안의 성립요건은 다음과 같다. 역시 출처는 의안정보시스템. ① 일정한 안을 갖출 것  ② 의원(10인 이상)·위원회 또는 정부 등 정당한 권한을 가진 자가...

지금 알고 있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

국회에서 일할 때 항상 법제 업무를 하면 답답함이 좀 있었다. 물론 법이라는 게 사람들의 기본적인 상식 선에서 이해되는 게 80% 정도는 되지만 법제 실무를 하려면 법 체계 자체에 대한 이해나 법적 사고방식이 필요하긴 하기 때문이다. 이런저런 법제 실무를 수행하면서 그 부분에 있어 부족했던 점은 법제실의 담당자 분이나 국회입법조사처 조사관 분들이 채워주셨다. 거의 과외 수준으로 떠먹여주실 때도 있었고 진짜 수업 듣는 학생처럼 받아 적고 이해하고 맞게 이해했는지 되짚어보고 다음에 또 법제 할 때는 조금 수업을 덜 들어도 되는 이해 상태로 만들어보자 생각하고 그런 반복이었다. 당시에도 지금도 국회 직원은 방송대 등록금이 지원되었지만 솔직히 보좌진이 방송대를 다니며 공부를 하는 건 언감생심이었다. 그리고 또 나름 학교를 다니는 건데 등록만 해놓고 대충 공부하는 것도 성질에 맞지 않아서 시도하지 않았다.(그리고 솔직히 그때는 인턴도 그 등록금 지원해주는 건지 확실치 않아서 시도 안 한 것도 있었다. 세전 120 시절이라 방송대 등록금도 부담스러웠다.) 지금은 역사 속으로 사라진 구 의원회관 복도에 쌓인 폐기 예정 각종 책과 서류 그리고 국회를 나오고 10년이 흘러서 사이버대학교의 법학과에 학사편입하기로 한 건 마치 고3 때 갑자기 정치학을 배우겠다고 결심했을 때처럼 그냥 '해볼까? 재미있을 것 같아' 정도의 결심이었다. 이걸 어디 써먹을 건 아니고 그냥 나의 지적 즐거움을 위해서. 그리고 실제로 즐겁기도 했다. 모르던 것을 알게 되는 건 정말 즐거운 일이다. 그리고 때때로 어떤 지식과 이해가 생겼을 때 저 옛날 국회에서 과외처럼 듣던 내용이 그제서야 진정으로 이해되는 경험을 하기도 했다. 그랬다면 어떤 법제 실무는 조금 더 용이하게 할 수도 있지 않았을까 그런 순간이 있긴 있었다. 지금 배우는 이 법에 대한 지식이 그때 있었다면 좀 더 세련되게 법제 실무를 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그런 종류의. 하지만 실제로 다시 학부생이 되어서 기초적인 법학을 공...

(백업) 정책 설계의 기본

정책 설계는 인간의 희생정신이나 양심에 기대면 안 된다. 김용익 전 의원이 예전에 어느 팟캐스트 나와서 본인이 한창 의대에서 공부할 때는 정부에서나 학계에서나 모두 민간의료가 자리잡아야 하고 다 개원의가 되기를 장려하고 그런 분위기였고 그게 오래 지속되었다고 말한 걸 들은 적이 있다.  지금 의료의 수도권/비수도권 격차는 그때 예견된 것이었을 거다. 의사에게 공공의료 종사자 같은 책임감과 직업윤리를 강요하지만 정부는 그에 따른 적절한 보상을 보장하지 않는다. 과거 그냥 의사가 절대적으로 부족했던 시절에야 의사들이 적정진료만 해도 과로사를 할 지언정 돈이라도 많이 벌었는데 저수가가 수십 년 지속되고 의사는 늘어나면서 과잉진료 등 부작용은 착착 늘었고 모든 자원과 인구가 수도권으로 집중되면서 당연히 의료도 수도권과 비수도권 격차가 커질 수밖에 없었다. 개원의든 대형종합병원이든 땅파서 수술하고 주사 놓는 것은 아니니 수도권에 집중되는 것이 어찌 보면 당연한 세상사에 흔한 영리 추구의 흐름이다. 성형외과 피부과 안과 집중. 압구정이니 신사동이니 즐비했던 성형외과도 이제 옛말. 최근 몇 년간은 설상가상 코로나 때문에 중국인도 못 오는 기간이 길었다. 그리고 이런 집중이 단순히 의사 집단이 너무 이기적이 영리추구만 하려고 한다고 비난하기엔 앞서 말해온 민간의료 위주의 유구한 역사가 있다. 드라마 '라이프'의 흉부외과 센터장 주경문(유재명 분) 극중 김해의료원(현실의 진주의료원)이 폐쇄되면서 상국대병원에 오게 되었다는 설정이었다. 수도권과 비수도권의 의료격차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수가현실화와 공공의료전달 체계 확립과 개편, 그리고 그 공공의료 체계에 투입되는 의사들에 대한 적정한 보상 수준과 지위 보장(적어도 작정하고 투신한 의사가 공공의료원이 문을 닫아 그만두는 일은 없어야 할 것 아닌가) 이 반드시 필요하다. 의대생 정원을 늘려서만 될 일이 아니다. 그렇다고 의대생 정원을 늘리지 말자는 이야기도 아니다. 저 문제를 같이 고민하지 않으면 앞으로도 영영 달라지...

(백업) 최태섭의 '한국, 남자' 독후감

최태섭 작가의 '한국, 남자'는 구절구절 각론으로 봐도 재미 있지만 큰 주제로 놓고 보아도 굉장히 인상적이었다.  독후감 겸 요약정리를 해볼 건데 이건 책을 읽고 내 식으로, 내 언어로 한 요약이라서 책에 나온 그대로의 표현은 아닐 수 있다. 우선 통사적으로 보아 1) 현대 한국의 기득권층은 진취적이고 자립성/독립성이 강한 남성을 원치 않아왔으며 2) 징병제를 통해 '나라를 지킨다'는 허구의 명예를 쥐어주고 노동력을 착취하며 부리기 쉬운 존재를 키워낸다. 3) 이 과정에서 여성을 비인간화하고 물화하여 비하해도 좋고 억압해도 좋은 대상으로 만들어왔다.  4) IMF라는 남성성 재정립의 기회조차 남성들의 자기연민으로 태워냈다. 이를 바탕으로 현 젊은 세대 한남(a.k.a. 썅대남)을 본다면,  1) 20세기 중반 이후 한국에서 남성 생계 부양자 모델은 허상(달성할 수 있던 가정은 매우 제한적이었으므로)에 가까웠다는 점을 감안할 때 2) 사실은 존재하지 않던 시절에 대한 향수에 더불어, 3) 어렸을 때부터 학업성취도로 이길 수가 없었던 데다 (군대를 안 가니) 나보다 일찍부터 돈을 벌며(실제로 동 연령대 여성임금이 남성임금보다 앞서는 건 20대 후반 구간 외엔 존재하지 않음.) 4) 걷고 생각하며 말하며 나와의 결혼을 원하지도 않는 여성에 대한 두려움을 공격성으로 치환하여  5) 여성에 대한 공격자로서만 자신의 허약한 정체성을 붙잡고 있는 모습이다. 이는 현 젊은 세대 당사자에게도 문제이고 이를 방관하고 오히려 더 조장하여 젊은 남성을 계속 억압하고 착취하려는 기득권이 있음을 생각해볼 때 장기적으로도 심각한 문제이다. 앞으로도 몇십 년을 이 땅에서 같이 살아야 하는 것이 현실이므로. 책이 후루룩 잘 읽혀서 좋았고 '도대체 왜 그래?'의 실마리를 좀 얻은 것 같았다. 한남도 한남이지만 최근 하게 된 생각은 716 집권 후에 실시한 뉴라이트 역사관을 물타기 하고 일제고사를 치게 하고 개인의 노오력을 강조하는 사조를 젊은 세대...

마저리! 이런 일까지 해봤다!

보좌진은 물론 의정활동 보좌에 가장 큰 역할을 하는 사람이지만 성질 상 기본적으로 '비서'이고 국회의원이 해야 할 일과 신경 써야 할 일은 너무 많은 데 비해 보좌진 숫자는 지극히 적다보니 보좌진이 공적인 업무 외에도 하는 일이 애석하게도 꽤 많다. 그래서 약간 내가 겪은 일과 거기서 일할 당시 들어본 기기괴괴한 보좌진의 다양한 업무를 가십성으로 좀 소비해볼까 한다. ※ 시작 전 주의사항!  이제부터 나오는 썰들은 마저리가 일하던 최소 10여 년 전의 이야기로 제22대 국회의 선진적인 국회의원실에서는 이런 일들이 전혀 벌어지지 않을 수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궁서체) 읍내 기록 갈무리 1) 식사 관련 의원과 보좌진은 정말 긴 시간을 함께 보내기도 하고 정치상황은 시시때때로 급변해서 밥때 맞추기가 쉽지 않을 때도 많으며 이번 내란사태에서 보듯이 낮과 밤도 따로 없이 집에도 못 가고 동고동락할 때가 많다. 그러다보니 먹고사는 문제가 참 중요하게 될 때가 많은데 일단, 국회의 구내식당은 운영시간이 정해져 있다. 당연하다. 장소가 국회일 뿐 본질은 급식실이니까. 그럼 이제 방법이 몇 가지가 있다.  국회 안에 있는 후생시설에서 파는 간식을 사오는 방법, 배달시키는 방법, 의원실 안 탕비실에서 무언가 만드는 방법.  후생시설에는 카페도 있고 제과점, 떡집, 하나로마트, 분식매장 이런 것들이 있어서 끼니를 때울 만한 것들을 살 수 있고 이 정도로 커버가 되면 아주 준수한 경우이다. 다음은 배달. 배달은 다 좋은데 타이밍이 어렵다. 영감(보좌진이 의원을 지칭하는 은어인데 결코 영감에게 영감님이라고 부르지는 않는다. 보좌진끼리만 쓰는 말.)이 딱 방에 와서 먹을 수 있는 타이밍에 대령을 해야 하는데 이게 안 맞으면 진짜 이 담당 보좌진(주로 행정비서)이 발을 동동 구르고 난리가 나는 것이다. 그리고 이제 픽업은 막내가 주로 해오고 먹기 좋게 아름답게 세팅해서 대령하게 된다. 그나마 요샌 배달앱이 잘 돼있기나 하지, 옛날에는 영감이 뭐 먹고 싶다 하는...

국회의원 숫자, 과연 몇 명이 적정한가?

2023년 통계로 한국의 인구는 약 5155만 8천여 명이라고 한다. 그런데 국회의원은 300명이다. 이건 많은 걸까, 적은 걸까? 아래 차트는 OECD에서 조회하면 나오는 각국 2023년 인구이다.  한국은 인구규모로 10위쯤 된다. 그리고 아래는 오마이뉴스에서 정리한 2023년 기준 OECD회원국 국회의원 1인당 인구수이다. OECD 평균은 의원 1인당 인구수는 약 8만2천 명인데 한국과 인구규모가 비슷한 국가들을 위주로 좀 보겠다. 한국보다 인구수와 의원 1인당 인구수가 많으면 빨강, 반대는 파랑으로 표시했다. 1) 콜롬비아: 인구수 약 5221만 , 의원 1인당 인구수 약 17만6천 2) 이탈리아: 인구수 약 5903만 , 의원 1인당 인구수 약 9만7천 3) 스페인: 인구수 약 4764만 , 의원 1인당 인구수 약 7만7천 4) 캐나다: 인구수 약 3942만 , 의원 1인당 인구수 약 8만9천 5) 영국: 인구수 약  6784만 , 의원 1인당 인구수 약 4만7천 6) 프랑스: 인구수 약  6834만 , 의원 1인당 인구수 약 7만3천 7) 폴란드: 인구수 약 3852만 , 의원 1인당 인구수 약 6만8천 미국은 좀 여러 모로 예외라고 하겠다. 인구규모도 다르거니와 미국인은 생활에서 90% 이상 주(state)법의 영향 하에 산다. 연방법과 결부되는 사항은 10% 이내다. 주의회로 따지면 이야기가 아주 달라진다 가령 내가 다니는 회사의 본사가 있는 로드아일랜드 주는 미국에서 작은 주에 속하는데 2023년 기준 인구가 109.6만인데 정원이 각각 상원 38명, 하원 75명이다. 인구 110만이 채 안 되는데 의석수는 양원 합쳐 총 113명, 1인 당 인구수를 나누면 채 1만 명이 안 되고 하원만 따져도 1만5천 명이 안 된다. 반대로 큰 주인 플로리다 주를 보면 인구 약 2261만에 상원 40명, 하원 120명이다. 1인당 인구수로 따지면 14만 1313명이니 이것도 한국보단 나은 수치다. 이런 반박이 있다. '미국처럼 우리도 ...